[사설]'진승현 게이트'는 또 무엇인가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35분


동방 대신금고 사건의 파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수백억원대의 ‘열린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터졌다. 젊은 벤처금융인이 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사금고(私金庫)처럼 썼다는 점에서 ‘정현준 게이트’를 빼닮았다.

진승현 MCI 코리아 부회장은 작년 8월 열린금고를 인수한 후 수시로 돈을 꺼내 기업인수와 코스닥 주식투자에 이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열린금고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대주주의 ‘열린 지갑’을 만들어준 셈이다.

금융감독원은 두차례 불법대출 사실을 적발하고도 솜방망이 징계에 그쳐 의혹이 짙다. 작년 9월 1차 검사에서는 자기자본의 3배에 가까운 불법대출을 밝혀내고서도 전현직 임직원 4명을 문책하는 가벼운 징계로 끝냈다. 당시 검사를 지휘했던 인물이 정현준 사건에 연루돼 자살한 장래찬(張來燦)전국장이라고 하니 장 전국장이 검사에 관여한 금융기관은 모두 재검사를 해야 할 판이다.

열린금고의 대주주인 진 부회장은 금감원 검사가 나오면 불법대출금을 갚았다가 끝나면 곧바로 대출받는 식으로 농간을 부리면서도 두 번에 걸친 금감원 검사에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금감원 김영재 부원장보는 진 부회장이 관련된 한스종금을 증권회사로 전환시켜달라는 부탁을 받고 49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이미 구속돼 있다. 이 사건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금감원 임직원들의 연루사실이 얼마나 더 밝혀질지 알 수 없다.

금융기관의 일탈을 막기 위해서는 금감원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경보가 울렸을 때는 무시해버리고 뒤늦게 사고가 터지면 자정결의대회를 하거나 관련법규를 손질한다며 뒷북이나 치는 식으로는 안된다.

검찰은 항간에 떠도는 정관계 로비설에 대해서도 한점 의혹 없는 수사를 해야 할 것이다. 열린금고의 대주주인 진 부회장은 정관계에 광범위한 인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맥이 솜방망이 징계를 결정하는 과정에 작용했는지 여부를 철저히 가려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제2의 정현준 게이트’라면 또 어디서 제3, 제4의 정현준 게이트가 터질지 모른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지방에서도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속된말로 ‘먼저 해먹고 튀는 놈이 임자’라는 그릇된 풍조가 번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근본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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