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니치는 폭로기사와 함께 조그만 ‘양해말씀’을 실었다. ‘고고학 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행위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미리 몰카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몰카라는 것이 엿보기나 부도덕한 증거수집에 쓰이고 욕먹는 것을 의식해서다. 어쨌든 몰카 특종은 별 비판 없이 찬사와 갈채만 받았다. 그러나 공익 목적이라 해서 다 그런 것만도 아니다. 10월에 일본 가고시마의 한 중학교에서 정반대 케이스가 있었다.
▷중2 담임교사가 이지메(집단 괴롭힘) 가해학생을 가리기 위해 몰카를 설치했다. 그런데 교실의 TV스피커 안에 교묘하게 숨겨놓은 것이 가해자를 붙잡기도 전에 한 아이에게 들키고 말았다. 가고시마 시교위는 “목적은 그렇다 해도 교육상 좋을 수 없다”고 나무랐고, 교사는 제자와 학부모에게 사죄해야 했다. 이지메를 당한 아이는 가방과 책을 칼에 찢기고 ‘죽어라’는 협박까지 수십차례 받는 상황이었지만 몰카를 쓰려한 교사는 그저 잘못을 빌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흉기이고 ‘이기(利器)’인가. 몰카 성능의 고도화로 숱한 논란이 일 것이다. 화장실 욕실에 관음증(觀淫症)을 채우기 위해, 러브신을 찍어 팔기 위해 몰카가 쓰이지만 그런 범죄적인 것은 판단하기라도 쉽다. 그것뿐이 아닌 혼란스러운 몰카시대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 당할지 모르는 판이다. 최선의 방책(?)이래야 우습게도 ‘누가 엿보아도 떳떳한, 하늘 아래 부끄럼 없는 행동을 하는 것’뿐이다. 율곡 선생이 그토록 강조한 독신(獨愼), 혼자 있을 때 스스로 근신하는 일이 이 어지러운 첨단시대의 가르침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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