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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15일 14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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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는 가수 활동 9년 동안 6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다. 하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나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나 그는 변함이 없었다.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호흡대로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굼벵이'란 별명을 지닌 이현우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행동한다.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답답함을 느낄 정도다. 하지만 이현우는 조금만 처지면 살아남기 어려울 같은 초고속 통신망 시대에도 '느림'의 매력을 은근히 뿜어내는 엔터테이너다.

기자가 이현우를 처음 본 것은 95년이다. 댄스곡 '꿈'으로 단숨에 정상에 올랐다가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호된 시련을 겪은 뒤였다. 기타리스트 김영진과 프로젝트 밴드 '문차일드'를 조직해 음반을 발표했을 때 만났던 그는 댄스 가수에서 록커로 변신을 시도했었다.
그는 인터뷰 당시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고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하지만 '문차일드'와 이듬해 발표한 솔로 3집은 기대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2년의 공백기를 갖는 동안 '이현우'라는 가수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지는 듯 했다.
기자가 이현우를 다시 만난 건 97년 11월 4집을 발표했을 때였다. 그는 여전히 차분했고 느리게 말했다.
"한 때는 음악을 접고 대학(그는 미국의 유명한 미술학교인 파슨스 스쿨 출신이다) 전공을 살릴까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여행을 다니고 낚시를 하면서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됐죠. '내가 음악에 대해 너무 편협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죠."

4집에 수록된 비발디의 '사계'를 샘플링한 발라드곡 '헤어진 다음날'이 각종 가요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을 때도 그는 '화려한 재기'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등을 한 소감을 묻자 "이제 '꿈'의 댄스 가수라는 딱지를 벗고 뮤지션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덤덤하게 밝혔다.
올해 6집 '요즘 너는'을 발표한 이현우는 여전히 가수로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영화 '메이'의 주연 배우로 등장했는가 하면 라디오와 TV의 진행자로 나서 어눌하면서 정감있는 말투로 대중에게 편안함을 던져준다.
이제는 음악을 즐길 만큼 여유를 찾았고 여유 시간이면 서재에서 전시회에 선보일 그림을 그린다는 이현우. 비록 한없이 느려 보이지만 '굼벵이 철학'을 고수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그의 모습은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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