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주우진/'지식경영' 아직 멀었다

  • 입력 2000년 11월 13일 18시 22분


자동차 공장을 견학한 사람은 2만개가 넘는 부품이 치밀하게 조립돼 하나의 멋진 자동차로 변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장이 유연 생산시스템을 도입해 다양한 제품을 한 라인에서 조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식공장(knowledge factory)'을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식공장에서는 정보가 유입된 뒤 가공되고, 가공된 정보는 한 개의 정보부품 이 되어 조립을 위해 비치된다. 그 후 정보상품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면 이 부품들은 즉시 조립돼 하나의 제품으로 출고되는 것이다. 지식공장은 토지가 필요없으며 환경 오염물을 배출하지도 않고 에너지도 사용하지 않는 미래형 산업이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와 기업들은 이런 지식공장이나 기업정보센터를 가지고 있다. 그 공장에 비치된 부품은 기술동향, 소프트웨어 솔류션, 경영사례, 기업분석자료, 산업 및 시장 연구, 고객 데이터베이스 등으로 이뤄진다. 지식공장을 활용하는 한 예를 보자.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의 한국지사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제안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정보를 지식공장에 요청한다. 그러면 본사의 지식공장에서 해당되는 선진사례, 산업연구, 소프웨어 솔류션 등을 취합해 다음날 한국에 이메일로 보낸다. 한국 오피스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할 경우 프로젝트 기간에 필요한 정보를 지식공장에서 계속 지원받게 된다. 프로젝트가 완료된 뒤 결과물을 한국 오피스에서 지식공장에 보내는데 그 곳에서 이를 분해해 새로운 정보부품을 만들어 공장에 비치하게 된다.

또 외국에서는 대규모 컨설팅회사 뿐만 아니라 법인이나 개인을 상대로 정보를 판매하는 전문기업이 지식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의 렉서스-넥서스라는 법률-경영 포탈에는 많은 학생, 회사원, 공무원, 변호사들이 유료로 접속해 보고서를 쓰거나 의사결정을 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얻고 있다. 후버스닷컴이라는 사이트에서는 세계 모든 대기업에 대한 상세한 기업분석 정보를 갖고 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언론사에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방대한 보도자료를 근간으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고급 정보를 국민이 많이 이용할수록 그들은 더 훌륭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고 이런 수많은 합리적 의사결정이 모여서 국가경쟁력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닷컴기업 붐을 타고 여러 정보 사이트가 생겼지만 대다수의 사이트가 1차원적인 정보나 오락을 제공하는데 그쳐 사용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도 회사원과 정책 입안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급 정보포탈이 존재한다면 지금처럼 정보부족 때문에 의사결정을 그르치는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은 늦었지만 정보화 혁명은 앞서 나가자는 우리의 의지가 점점 퇴색돼고 있으며 지식경영에 대한 관심도 원론 수준에서 맴도는 감이 있다. 지금 한국경제는 외국과 같은 지식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지식통합자가 필요한 때다. 물론 이런 토종 지식통합자가 없어도 외국의 지식포탈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겠지만 언어장벽을 넘어서 손쉽게 외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계층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며 이는 그만큼 우리 경쟁력이 약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경제위기로 몰아넣은 정책과실의 많은 부분이 정보부재에 기인하며 지금 퇴출당하는 기업의 의사결정의 과실도 세계 경영조류에 대한 정보부족에 원인이 있다.

지식경영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한국의 지식포탈들도 다양한 제휴 및 산학협동을 통해 광범위하고 심도있는 정보를 많이 확보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식경영 사회를 위해서 소비자 마인드의 전환도 필요하다. 한국 소비자는 지식을 산다는 개념이 희박하다.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비는 아끼지 않지만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투자에는 인색한 편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투자자들이 묻지마 투자 로 힘써 번 돈을 손쉽게 날려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모든 것이 공짜라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지식사회의 건전한 룰이 정착될 것이다.

주우진(서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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