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금감원 개혁 제대로 하자

  • 입력 2000년 11월 9일 18시 59분


지난해 설립된 조그만 금융회사의 대표인 K씨. 그는 금융감독원에 설립신고하러 갔다가 직원의 말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고 털어놓는다.

“앞으로 금융업에 종사하려면 금감원에 모든 사실을 먼저 알려야 합니다. 금감원 이외의 다른 곳에서 금감원보다 먼저 알게 되면 곤란합니다.”

금감원에 회사설립을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담당자로부터 혼이 났다는 얘기였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나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단골 메뉴가 있다. 바로 금감원에 대한 불만사항이다. 공개회의에서 금감원 방침에 ‘반항’하다 골탕먹은 일, 검사 나온 직원들에게 당한 얘기 등등.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 이후엔 이런 비판이 더 노골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금감원을 하루빨리 개혁하라는 주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개혁의 고삐를 기획예산처에 맡겼다. 올해 말까지 개혁안을 마련해 관계법령을 고치고 내년 1·4분기 중 시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너무 힘이 세진 금감원의 권한을 줄이고 조직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데 대략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금융기관 인허가권을 뺏어 재경부 등 다른 기관으로 넘기거나 감독기능과 검사기능을 분리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금융계의 반응은 정작 시큰둥하다. 처음엔 개혁에 열을 올리는 듯하던 정부도 마찬가지다. 사실 금융인들은 금감원의 변화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바꿔봐야 그게 그거라는 얘기인가.

먼저 근본적인 개혁안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금감원이라는 조직이 바로 김대중 정부의 개혁을 상징하고 있고 금융 증권 보험으로 나누어져 있던 감독원을 개혁차원에서 한데 합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금감원의 권한을 다른 기관에 준다고? 오히려 상전만 많아진다고 걱정이다. 외국에선 감독권이 분산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고 있다는데 왜 우리는 안될까.

감독기구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감독방식이 함께 달라져야 한다. 현재 금감원은 ‘모든 금융정보는 금감원으로’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간섭하지 말아야 할 일에 간섭하고, 심지어는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감독기관은 국민의 재산을 보관하는 금융회사들의 부실을 막는 게 가장 중요한 소임이다.

금감원 직원들의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들리는 얘기로는 금감원 직원들이 ‘두고보자’는 식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한다. 마치 금감원이 부패의 온상처럼 비치는 데 대한 항의라고 한다. 얼마 전 열렸던 금감원 자정결의대회에 대해서도 불만의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금감원이 있어야 구조조정이 제대로 된다면서 은근히 개혁연기론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제 기업이나 금융계를 걱정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 정부도 금융감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금감원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금감원 개혁이 흐지부지 끝나면 구조조정도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게 틀림없다. 이번 기회에 금융감독업무를 차라리 민간에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박영균기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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