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평범의 미학' 아는 개그 듀오 '클놈'

  • 입력 2000년 11월 8일 18시 38분


'키 182cm, 체중 73kg. 나이 31세.'

체격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흠잡을 데 없이 듬직한 한국의 남자이건만 그들을 보면 사람들은 웃음부터 터트린다. 개그 듀오 '클놈'의 지상열과 염경환. 서른살, 남들은 너무 늦었다고 혀를 차는 나이에 함께 손을 잡고 콤비로 나선지 2년이 다 됐다. 데뷔 초에 비해 얼굴도 많이 알려졌고, 인기도 높지만 그래도 아직 프로그램 전면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연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버라이어티 쇼나 토크 쇼에서 그들이 보이면 왠지 즐겁다. 시도 때도 없이 "내 사랑 효리"를 찾으며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우기는 지상열과 그런 그를 옆에서 매몰차게 몰아세우는 염경환의 다툼을 보노라면 입가에 절로 빙그레 미소가 생긴다.

현란한 개인기나 탁월한 입심을 가진 것도 아니다. 튈려고 유별한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지만 특별히 잘났거나 못나지도 않은 우리 이웃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다. 스타로서 뜰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니진 않았지만, '클놈'은 자신들만이 지닌 평범함과 소박함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오랜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 이제 프로그램의 맛과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 같은 존재로 자리잡은 '클놈'을 <이홍렬쇼>의 녹화장에서 만났다.

-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알고 있는데, 서로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나요?

(경환) 87년 제물포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만났으니까, 햇수로 14년 됐죠. 정말 징그럽게 오래 보고 있어요.

- 개그 듀오를 결성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언제인가요?

(상열)학창시절 단짝이던 경환이가 개그맨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부러웠어요.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나도 해야겠다 마음먹고 도전했지만 2년 내리 방송사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 떨어지고 3년째 겨우 붙었죠. 그때는 이미 경환이는 리포터로 활약을 하고 있었고, 저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무명의 신인이었죠. 그렇게 각자 활동하다가 99년 초에 <멋진 만남>에 함께 나오면서 서로 팀을 짜서 활동하자고 했죠.

염경환은 93년 SBS 공채 2기, 지상열은 96년 공채 5기로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적게는 5년에서 길게는 8년을 무명으로 지냈던 이들은 그래서 '기다림의 미학'과 '참는자의 행복'을 알고 있는 듯 했다.

- 지상열씨는 개그맨 활동을 하기 전에는 인천에서 꽤 유명한 DJ였다고 알고 있는데 그때 수익이 오히려 개그맨으로 전업했을 때보다 훨씬 많았다고 하는데 맞나요?

(상열) 그냥 조금 활동했지, 유명했거나 수입이 많았던 것은 아니에요.

(경환) 경제적인 면에서는 DJ로 활동했을 때가 더 좋았죠. 솔직히 신인, 그것도 무명 개그맨이 얼마나 벌이가 있겠어요. 개그에 대한 열정 하나로 버틴 것이죠.

- 2년 동안 팀을 이루어 활동하면서 혹 서로 마음이 안맞거나 흔들린 때는 없었나요?

(상열) 한번도 그런 적은 없었어요. 다만 지난 여름 프랑스 칸 영화제에 갔다온 이후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아 좀 고민을 했죠. 프랑스어도 모르는 상황에서 현지에서 '맨 땅에 헤딩한다'는 각오로 갖은 고생하며 찍었는데, 방송이 중단되는 통에 바라지 않는 활동 공백을 갖기도 했죠.

(경환) 그래도 지금은 SBS <좋은 예감, 즐거운 TV>와 <이홍렬 쇼>에 나가고 있어요. 일주일에 평균 5일을 촬영하니까 어떤 면에선 주말에만 집사람과 있고, 나머지는 늘 상열이와 있는 것이죠.

염경환은 현역 스튜어디스와 결혼한 유부남이다. 하지만 그의 절친한 동기인 지상열은 아직 미혼. 질문의 방향을 장안의 화제인 그의 짝사랑 '효리'에게로 돌렸다.

- 지상열씨는 늘 방송에서 '내 사랑은 핑클의 효리'라고 말하는데, 정말 좋아하세요?

(상열) 이런 이야기 해도 되나? 사실 남자로서 핑클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예쁘고, 노래 잘하고…. 그중 이효리씨가 가장 눈에 와닿더라구요. 솔직히 말하면 연인의 느낌보다 같은 동료로서 '참 예쁘고 노래 잘한다'라는 그런 감정이죠. 그런데 언젠가 <멋진 만남>에서 이상형으로 밝히라고 하기에 엉겹결에 '효리'라고 했는데, 다른 때는 어떤 조크를 해도 시큰둥하던 방청객들이 환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어요. 개그맨들의 표현을 빌리면 제 애드리브가 모처럼 '터진 것'이죠. 그후 방송에서 계속 그 이미지를 밀고 나갔더니, 결국 효리와 만나는 기회도 얻게 되데요. 덕분에 저는 좋은 개그 아이템으로 활용을 했지만, 저 때문에 괜히 이효리씨가 곤란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지상열이 방송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어딘가 모자라고 자기 고집만 센 아둔한 인물이다. 동료 염경환의 조크도 주로 그의 '지능'에 관한 것이고, 그가 각종 코너에서 보여준 모습도 그런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지상열이 깔끔하고 세련된 핑클의 이효리를 짝사랑한다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의 극치.

하지만 지상열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가 방송과는 달리 지능이 낮지도, 아둔하지도 않은 멀쩡한 인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오히려 방송 때 우연히 던진 말에서 힌트를 얻어 시청자가 즐거워하는 '웃음거리'을 만들어낸 '프로'로서의 철저함과 완벽한 연기력은 그가 타고난 '희극인'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 그러면 상열씨가 좋아하는 이상형은 어떤 타입인가요?

(상열)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보다는 활동적인 여자가 좋아요. 가급적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서구적으로 시원스럽게 생긴 여성이라면 최고이죠.

- 두 사람의 성격은 어때요? 개그맨들 중에는 방송과 평소 이미지가 다른 분들이 많던데요.

(상열) 경환이는 내성적이고 말이 별로 없어요. 편한 친구하고나 말을 할 뿐, 낯도 가려요. 하지만 예외가 있다면 예쁜 여자 앞에만 가면 굳어있던 혀가 풀려 말이 술술 나오죠.

(경환) 상열이는 수더분한 성격이에요. 말은 많지 않지만, 가만히 집에 있지 못하는 외향적인 성격이죠.

- 두 사람 언제까지 듀오로 활동할 생각인가요? 계기가 되면 각자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할 때가 생길텐데….

(경환) 방송활동 접으면 헤어져야죠. 방송에 계속 나오는 동안은 계속 콤비로 활동하려고 해요. 그게 편한 것 같아요.

- 만약 방송활동을 그만두면 무얼 할 생각이세요?

(상열) 방송활동에 후회도 없고, 돈도 모았다면 양로원과 같은 봉사기관을 운영하고 싶어요. 친구 중에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친구도 있어 그런 일을 하면 왠지 기분 좋을 것 같아요.

- 그러면 경환씨는 ?

(경환) 뭐, 저도 상열이랑 함께 양로원 일을 하고 있겠죠.

때론 모자란 듯, 또 세상물정 잘 모르는 철부지 같은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그들이지만, 이들이 동료들과 함께 시간날 때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나가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평범함에서 즐거움을 주는 클놈이지만, 그들이 세상을 사는 모습은 정말 예뻤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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