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권 로비의혹, 덮으면 안된다

  • 입력 2000년 11월 6일 19시 07분


그동안 검찰은 과거 권력에는 강하고 현재의 권력에는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검찰의 이런 행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정(司正)이란 이름으로 나타났고 그 때문에 표적수사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검찰은 12·12, 5·18 등 이른바 신군부의 집권과정에 대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꾸었는가 하면 지난해 옷로비 사건 때는 정권의 눈치를 보다 결국 특검제를 불러왔다.

그런 검찰이 다시 시험대에 섰다. 다름 아닌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 수사다. 우리는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수사하느냐에 따라 검찰의 정치적 중립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수백억원의 불법대출을 주도한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鄭炫埈)사장과 동방금고 이경자(李京子)부회장이 정관계(政官界)에 로비를 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미 여권 실세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거론됐고 이것이 여야의 정치쟁점으로 번진 상황이다.

물론 검찰은 계속 철저한 수사를 다짐하고 있고 정사장 등의 불법대출 규모와 주가조작,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의 뇌물수수 혐의는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은 것이 사실이다. 검찰은 특히 이부회장이 금감원 간부들에게 10억원의 뇌물을 전달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를 확인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이 아예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시중에는 벌써 검찰이 이 사건을 ‘부도덕한 벤처사업가의 대규모 금융사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서기 직전 동방금고 유조웅 사장이 해외로 도주했는가 하면 이부회장의 정관계 로비창구로 소문난 오모씨 역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해외로 도피한 사실을 두고도 말이 많다. 검찰이 정치권 수사를 덮기 위해 관련자들의 해외도피를 모르는 척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나라당은 검찰이 이 사건의 핵심인물로 수배를 받아오다 자살한 장래찬(張來燦)전 금감원 국장의 도피를 방조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뿐만 아니라 정사장이 발행한 어음과 당좌수표 목록을 제시하며 철저한 추적을 요구하고 있다.

검찰이 이같은 의혹제기에 당당하게 맞서는 길은 철저한 수사뿐이다. 특히 정사장이 개설한 사설펀드 가입자의 차명(借名)여부를 가려 실명이 거론된 여권 실세들의 개입여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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