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성적은 훈련량의 그림자

  • 입력 2000년 11월 6일 18시 47분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을 일이다. 곡선도형을 보다가 곧 직선도형을 보면 어떻게 되는지의 실험이다. 직선도형이 곡선도형과 반대방향으로 휘어져 보이지 않는가. 이런 현상을 도형잔효라고 한다.

비슷한 현상이 스포츠에도 있다. 운동잔효(運動殘效·ki―nesthetic after effects)라는 것이다. 스포츠 심리학 용어인데 간단히 말하면 10kg짜리 덤벨을 들었다 내려놓은 뒤 5㎏짜리를 들면 처음부터 5㎏짜리를 들 때보다 가볍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운동잔효를 경기관람 때도 운동할 때도 경험하게 된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야구선수가 하는 행동은 그런 예의 하나이다. 연습 스윙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내용은 같다. 타자들은 끝이 매우 무겁게 제조된 방망이, 두 자루의 방망이, 둥그런 쇠 굴레가 끼워진 방망이 등을 힘차게 휘둘러본다. 그리고 규정에 맞는 방망이로 타격에 나선다.

골프 애호가들이 필드에 나서기 전 여러 개의 골프채로 스윙 연습을 하는 것은 물론 근육을 풀어주려는 뜻이 크다. 하지만 라운딩 중에도 무거운 골프채 또는 두 개의 골프채로 연습스윙을 하는 골퍼도 있다. 어떤 계산이나 기대감에 따른 것일 게다.

그렇다면 야구선수나 골퍼의 이러한 관행은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둘까. 과문한 탓인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이라 하지 않으면 뭔가 수순이 틀린 것 같아서…’라든지 ‘효과가 있지 않겠어요’라는 정도의 말이 고작이었다. 도형잔효가 곧 사라지듯 운동잔효도 오래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운동잔효의 지속시간은 경우에 따라, 개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짧으면 몇 초, 길어야 수십 초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있다. 그리고 경기력의 증대로는 나타나지 않으며, 오히려 감각이 달라지는 경우도 나타나는 게 운동잔효의 특징이라는 연구도 있다.

운동잔효가 별게 아니라는 말인데 정말 그렇게 보아야 할까. ‘아니다’라는 게 내 생각이다. 연습스윙 등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줄 것이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할 것이란 얘기이다. 운동잔효를 심리적 안정감의 면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운동이든 무엇이든 편안한 마음이 성패의 한 요인이 되는 법이다. 강한 훈련이야말로 편안한 마음의 원천이 되고 결국 좋은 성과로 이어지는 게 일상의 순리 아닌가.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마감되고 프로농구의 한 시즌이 시작된 시점이다. 운동잔효가 아닌 훈련잔효가 성적으로 나타났고 또 나타나리라는 생각이 들어 한마디해보았다.

윤득헌<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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