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경의선 환경조사 구색만 맞추나

  • 입력 2000년 11월 5일 19시 30분


경의선 복원 및 남북연결도로(통일대교∼장단∼개성) 건설에 따른 비무장지대(DMZ) 환경생태 조사가 ‘구색 맞추기’식으로 끝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9월25일부터 활동에 들어간 조사단의 중간보고서 및 지난달 30일 환경부에서 열린 회의 자료에 따르면 조사단은 “환경 조사가 충분치 않으므로 조사 기간을 늘려야 하며 DMZ 지역 일부는 반드시 교량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는 내년 9월까지로 못박은 공사 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12월말까지 환경영향평가를 끝낸다는 방침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겉만 보고 환경조사 끝?〓조사단은 민통선 지역과 DMZ지역 등에 총 4차례 현지 답사를 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조사를 벌이지 못했다고 전제한 뒤 중간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DMZ지역에는 아카시아 상수리나무 물억새 군락이 형성돼 있으며 줄 매자기 등 수생식물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습지에 청개구리 참개구리 산개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어 이들을 잡아먹고 사는 파충류가 풍부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된 구렁이가 장단역 근처에서 서너마리가 발견됐다.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도 3무리 17개체가 발견됐고 큰기러기 조롱이 말똥가리 큰말똥가리 등이 관찰됐으며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인 따오기도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다.

조사단은 이를 근거로 “DMZ내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전 구간을 지하터널로 하는 것이며 공사 기간과 비용 및 토목 기술적 측면에서 어렵다면 습지(장단∼군사분계선 750m구간)는 교량으로 건설하고 나머지 구릉지와 능선은 터널로 한 뒤 그 위에 원래의 식생이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주장했다.

▽공사 기간에만 매달리는 정부〓정부는 조사단의 의견을 인정하면서도 시간상 여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당초 내년 9월까지 공사를 끝낼 것이라고 발표한 건교부와 설계를 맡은 ㈜유신코퍼레이션측은 347억원의 추가 예산이 소요되고 공사 기간이 20개월 이상 소요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공무원은 공사 기간을 연장하자는 얘기는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신은 환경영향 초안 평가서를 이미 작성한 상태. 다음달 초 최종 평가서를 제출한 뒤 12월말 환경 영향 평가 협의를 끝낼 계획이다.

철도청도 경의선 복원과 관련한 환경영향평가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철도청은 조사단에 “1000만원의 예산으로 도로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 경의선 복원 환경영향평가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충분한 조사가 급선무〓환경영향평가법상의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공사와 환경영향평가를 병행하는 것도 문제지만 조사단이 주장하듯 뒤늦은 환경 조사조차 수박 겉핥기로 끝내려 한다는 게 보다 본질적인 문제다.

조사단장인 서울대 김귀곤(金貴坤·조경학)교수는 “DMZ의 생태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환경영향평가 요건만 갖추는 정도의 환경 조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DMZ를 ‘접경생물권보전지역(TBR)’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며 이를 독려하기 위해 마츠우라 고이치로(松浦晃一郞)사무총장이 조만간 남북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 전문가들은 “앞으로 DMZ 지역에 고속도로 등 여러 공사가 진행될 것이므로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면서 “최소한 내년 4, 5월까지는 철저하게 환경 조사를 벌인 뒤 적절한 설계와 공법을 택해 공사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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