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 입력 2000년 11월 1일 10시 26분


◇진화하는 영혼이 부르는 생명의 노래

서기 2092년. 사기업 CSC (Cosmo Spaceway Co.:우주 철도공사)의 세번째 우주 스테이션 '디오티마'가 완공된다. 특수합금으로 이루어진 직경 2km의 구(球)형 거대 구조물인 디오티마는 최대 속력을 초속 540km까지 낼 수 있다. 이 곳 역장으로 약관 26세의 금발미인 나머 준이 부임한다. 그녀는 취임식에서 태연스럽게 '디오티마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주함선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역장이 아닌 '함장'을 자처한다.

달의 은어로 '진화하는 영혼'이라는 의미의 '디오티마'는 작품 전반에 걸친 중요한 키워드이다. 등장인물들의 주 무대가 되고 있는 우주 스테이션의 공식 명칭이며 여주인공 나머 준의 전생이었던 우주선 선장의 별명이다. 거기다 여러 번 환생하는 준 함장의 영혼이 처음 깃들었던 소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최초로 달의 크기를 관측했던 아리스타르코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고대 그리스 여성 디오티마. 그녀는 인간이 세대를 거듭해야만 '지혜'가 성장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지만, 지식을 향한 포기할 수 없는 갈증을 느낀다.

그런 열망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그녀의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수천 년을 거쳐 여러 육신의 삶과 죽음을 반복한 끝에 우주 스테이션 '디오티마'의 함장 나머 준의 육신에 안착한다.

'진화하는 영혼'이란 설정은 다소 난해하면서도 신비한데 종교적 의미의 환생과는 다르다. 전생의 악업 혹은 선행으로 다음 생의 삶이 결정되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환생을 거듭해도 동일한 영혼을 소유하고 있으며 매번 객채로서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

'몇 번을 맞이해도 혹독한 죽음의 순간'을 감수하면서도 나머 준은 유한한 존재로서 무한한 세상의 진리를 알고자 몸부림친다. 독자는 거기서 역사와 함께해온 진화의 기록이 어떻게 한 인간의 영혼에 기록되는지를 엿보게된다. 삶, 지식, 사랑, 죽음 - 인간 생명의 모든 희로애락을 끌어 안고서 서서히 그리고 외롭게 고투하는 한 영혼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는 누구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삶의 의미를 등장 인물들의 갈등과 고민을 통해 무지개 빛깔처럼 다양하고 아름답게 표현해낸다. 국내 순정만화계의 가장 역량있는 신진 작가중 하나인 작가 권교정은 데뷔 4년차가 소화해 내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고 편안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소슬바람 부는 11월, 순정 SF물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와 함께 떠나는 우주여행에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 보는 것도 괜찮은 일 같다.

"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요. 거기의 흙이 되고 싶어요. 영원히 순환하는 생명의 에너지가 되고 싶어요..."(제 3화 '생명의 레퀴엠' 中)

김지혜<동아닷컴 객원기자>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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