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일부 '중심'못잡고 있다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8시 58분


북한측의 남북한관계 일정지연 문제에 대처하는 통일부의 태도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어제 한 대학의 연구원이 주최한 조찬모임에서 북측이 ‘일손’ 부족과 북―미 관계의 급진전 등으로 한두달 남북한 관계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며 이에 대한 ‘양해 각서’를 우리에게 보내왔다고 밝혔다. 박장관은 그래서 11월초와 12월초 하기로 합의한 2차, 3차 이산가족상봉도 12월과 1월로 순연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측이 ‘양해각서’를 보낸 사실은 없고 구두로 그같은 양해를 구했을 뿐인데 박장관이 착각한 것 같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또 이산가족 상봉을 12월과 1월로 순연하는 것도 확정된 일정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선 남북한관계의 일정이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통일부측이 진작 그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여 국민을 상대로 공식적인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더욱 그렇다. 북한측이 상봉대상자 명단 교환을 일방적으로 지연시킴에 따라 준비기간을 역산하면 2차 상봉이 예정일(11월2∼4일)에 도저히 성사될 수 없다는 판단을 정부는 오래 전에 내리고 있었다.

북측은 이미 지난 9월말 제3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일정지연 가능성을 얘기했다는 사실을 박장관은 어제 모임에서 뒤늦게 밝혔다. 그렇다면 그 즉시 북측의 진의를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리고 국민에게 왜 2차상봉이 합의대로 성사되기 어려운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상세히 밝히는 것이 정부의 도리다. 어제처럼 제한된 인사들만 참석한 모임에서 지연 사유를 ‘흘리듯’ 밝힐 일이 아니다.

정부는 2차 이산가족상봉이 어렵게 된 데 대해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측에 항의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이 옳다고 본다.

박장관이 설명한 북측의 지연 사유도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북측의 주장대로 앞으로 북―미 관계 일정이 계속되면 남북관계 일정은 자연히 무한정 연기될 수밖에 없다는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잖아도 야당측에서는 북측이 합의 일정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해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수모’만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북한에 대해 할말은 하고 남북관계 진행사항을 보다 투명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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