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부실기업에 왜 연연하나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8시 46분


부실기업 퇴출 여부를 심사중인 채권단이 이른바 핵심 부실징후기업을 대부분 회생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애초에 상정한 퇴출 기준을 충족시켜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사료돼 부실판정에서 제외됐다면 퍽이나 다행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 미봉책으로 도출된 의사결정이라면 우리 경제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하는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어 다수의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다.

최근 우리 경제는 개혁 분위기의 이완과 개혁 피로현상을 노정하면서 각종 실물지표의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되고 있으며 금융불안감에 따른 신용경색, 예상치 못한 고유가의 장기화로 인한 실물경제의 위축은 거시지표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보다는 훨씬 심각한 실정이다. 그 근본원인은 목표치에 크게 미달했거나 시행과정의 오류로 점철된 4대 부문 구조조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차 기업구조조정에서는 실업을 의식해 퇴출보다는 워크아웃 등 기업 회생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워크아웃 기업을 선정하는데 있어서 투명성의 결여는 차지하고라도 각종 도덕적 해이와 경영이 개선된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함으로써 실패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시중은행들은 기업을 회생시킨다는 명분으로 설비와 운영자금의 신규대출은 물론 출자전환에 대손충당금까지 쌓고 있어 은행부담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어서 2차 금융구조조정을 무위로 돌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기업부실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금융부실을 치유할 수 없는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부채탕감 출자전환 등 금융특혜로 자금사정이 좋아진 워크아웃 법정관리 화의 업체들이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는 저가(低價)낙찰로 기존의 우량업체까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건전한 은행마저 부실하게 만들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워크아웃이 진행중인 연말 결산법인의 상반기 경상손실이 전년도의 같은 기간보다 150% 가까이 늘어났다는 사실이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 주는 단적인 예로서 충분하다. 문제의 핵심은 기존의 누적부실을 얼마나 신속히 정리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이것이 곧 금융 건전화의 요체인 것이다.

부실기업 판정을 위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 마련과 이의 투명하고 예외없는 집행이 외환위기 초기단계에 확실히 이뤄졌더라면 오늘과 같은 2차 구조조정의 논의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이를 교훈삼아 이번에야 말로 정부와 채권은행이 공히 강력한 정책의지를 갖고 부실기업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지을 전기로 삼아야 한다. 이는 국민의 정부 제2기의 개혁의지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2단계 부실기업 정리는 곧 단행될 금융구조조정의 성패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가늠하는 또 다른 기준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이 미흡할 경우 미국 경제처럼 장기적으로 경기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경제체질의 전환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기적으로도 내년도 우리 경제는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부실기업을 판별하고 퇴출압력을 가하는 정책이나 재무구조의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이를 지키도록 하는 정책이 시장과 채권은행의 몫이라고 하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위한 시장여건이 성숙돼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채권은행에만 맡겨 둘 수 없으며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뒷받침이 함께 해야 한다. 예컨대 채권단이 결정한 부실 판정에서 제외된 기업에서 향후 부실이 발생할 경우 주채권은행에 책임을 묻기로 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마련에 정부는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기업이나 금융의 구조조정은 이번의 일과성 작업으로 끝날 일이 결코 아니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끊임없이 실천해야 할 과제다. 중장기적으로 시장경제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부문별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와 경제여건의 형성에도 정부는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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