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엄마의 와우! 유럽체험]지금 우리는 제네바로 간다

  • 입력 2000년 10월 13일 11시 53분


제네바 행 기차를 기다리며, 나우는 여전히 꿈나라. 오늘의 기상은 새벽 4시. 도시락, 커피, 옷과 기저귀 등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당일치기로 제네바를 다녀오자는 야무진 계획은, 대한민국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스위스이기에 가능한 일이죠. 모자란 잠은 기차에서 자기로 하고, 우선 기차역 벤치에 앉아 뜨거운 커피 한잔.

미끄러지듯 들어서는 제네바 행 열차. 하여간 스위스 기차는 시계라니까요.그런데 이게 뭐죠? 부드러운 스탠드 불빛 아래, 중년부부가 우아하게 아침식사 중. 그 유명한 스위스의 식당 차군요. 제네바까지의 여정은 3시간. 그렇다면 우리도 근사하게 모닝커피 한잔 어때요?

빵과 잼, 커피와 홍차, 오렌지주스가 포함된 세트메뉴가 12프랑이니까 약 만원 정도. 좀 가볍게 지나가고 싶으면 수프, 오믈렛, 과일, 케이크 등의 일품도 있구요. 한식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나우 엄마. 순간 한국 기차역의 가락국수 한 그릇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만, 상기합시다, 여기는 스위스라는 사실.

음...밀크커피 한 모금과 어우러지는 린트 쵸컬릿의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군요. 옆 테이블의 중년신사를 따라, 건포도 빵에 얇게 오렌지 잼과 버터를 섞어 발라먹는 것도 괜찮구요. 달짝지근한 음식이 많은 스위스. 그래서 그런지 커피는 정말 진하게 마십니다. 두어 잔 마시면 심장이 콩콩콩. 그래도 후한 인심의 웨이터는 계속 커피 리필 중입니다.

향긋한 커피 내음. 새벽안개 사이로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희미한 등불을 켜며 아침을 준비하는 농가의 정경을 보니, 순간 어린 시절에 읽던 화보집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집집마다 소여물거리를 담아 두는 흰색 비닐주머니도 나란히 나란히. 정리정돈의 귀재, 스위스의 진면목이죠.

어느새 가만 눈을 뜬 나우는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에 '또 어딘가 가고 있군' 하는 담담한 표정. 순간 웨이터 아저씨가 가져온 그림책과 색연필을 보고 신바람을 냅니다. "나의 스위스"라는 제목의 그림책에는 스위스 여행 정보가 아이들 눈 높이로 재미나게 그려져 있군요. 6개들이 미니 색연필은 여행가방에 넣어 다니니 안성맞춤이구요.

좁은 선로를 따라 아기자기한 평원을 달리던 기차는 이제 레만 호를 끼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스위스의 수많은 호수 중에서 맛형 노릇을 톡톡히 하는 레만 호수. 이토록 단아하게 자연을 가다듬어 놓은 스위스 사람들. 모더니즘 디자인의 싹이 어떻게 스위스에서 움텄는지 알 수 있죠. 집이며, 정원, 호수, 벤치의 색상 하나 하나도 어쩌면 그렇게 자연의 색과 어우러지는지... 푸른 호수 곁의 붉은 벤치와 한 그루 마로니에 나무의 조화, 흰색 유람선에 매달린 십자가 깃발. 간간이 들려오는 알펜호른 소리는 무중력지대에 있는 듯한 황홀함 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 레만의 호숫가에서 찰리 채플린은 고요한 노년을 보내고. 시인 바이런은 '시옹성의 죄수'를 썼대요. 비록 나우 엄마는 레만호를 바라보며 기저귀를 갈고 있습니다만...

제네바 전체 인구는 40만. 세계각국에서 온 외교관과 비즈니스맨 숫자가 3분의 1을 차지하는 국제도시죠. 이성과 감성, 낮과 밤이 묘하게 녹아있는 야누스 도시라고나 할까요.

와, 드디어 요트하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6백 개의 요트가 물새처럼 호수를 장식하는 6월의 볼도르(Bol d'Or) 요트대회는 장관이라죠. 여름 내내 호반을 누비는 시걸 보트, 일명 갈매기 택시도 명물이구요.

8월에는 밤새 와인과 불꽃놀이에 취한다는 제네바 축제가 있죠. 밤새도록 클래식의 선율과 재즈의 나른함에 흔들리는 도시. 그를 조용히 내려다 보는 몽블랑의 푸근함은 백발의 인자한 아버지를 연상케 합니다.

드디어, 제네바에 도착했습니다.

<김지민>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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