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직 수사중인데 '억울하다'?

  • 입력 2000년 10월 10일 19시 00분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외압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이 ‘외압은 없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줄곧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해온 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씨에 대해 청와대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이 청부수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불법감금을 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 역시 이씨가 주장하듯이 외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사직동팀 직원의 개인적인 비리라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검찰이 어제 발표한 수사결과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의 발표가 있기 하루 전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와의 회담에서 “박지원 전장관이 억울하게 사퇴를 한 것 같다”고 앞질러 말했고 결과적으로 검찰의 수사결론은 김대통령의 이 말을 뒷받침한 격이 됐다.

김대통령은 박 전장관이 이 사건과 관련해 자진 사퇴하기 전에는 “박 장관이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은 알지만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의 주장대로 이운영씨가 박 전장관으로부터 직접 압력전화를 받았다는 부분은 허구일 수도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대통령의 언급은 우선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했다. 사실여부를 떠나 김대통령의 박 전장관에 대한 관심 표명은 결국 이미 한계가 그어진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의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직 수사가 끝난 것도 아니다. 검찰의 수사결론에 의문점도 적지 않다. 보증기금사건의 경우 사직동팀의 내사착수 경위가 여전히 의문이다. 단지 사직동팀 직원의 개인비리라고 단정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박 전장관이 이운영씨의 메신저 역할을 한 동국대 총동창회 관계자를 세차례나 만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증기금 사건과 마찬가지로 아크월드 대표 박혜룡(朴惠龍)씨가 외부의 힘을 동원해 불법대출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한빛은행 사건에 대해서도 재수사가 진행중이다. 단순사기극이란 1차 결론을 내렸던 서울지검 조사부가 계속 수사를 맡아 그러잖아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지 논란이 일고 있는 마당에 김대통령의 ‘억울한 사표’라는 말이 나온 것은 검찰로서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결과를 내놓아도 불신을 살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국정조사도 남아있다. 현단계에서 누가 억울하니 안하니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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