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Metro]싱가포르 총기클럽 '까마귀와 전쟁'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45분


‘싱가포르는 18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상대는 바로 까마귀.’

82년부터 정부의 위탁을 받아 까마귀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 주역들은 바로 ‘싱가포르 총기 클럽’의 회원들. 취미로 사냥을 즐기는 이들은 정부로부터 탄환을 지급받으면서 ‘까마귀 전쟁’의 일선에 나서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소탕작전이 시작된 것은 까마귀가 부패한 고기를 먹기 때문에 병균을 옮길 수 있다는 싱가포르 정부의 판단 때문이다. 농식물 검역소는 까마귀를 ‘사회악’으로 규정할 정도다. 여기에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까마귀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싱가포르 시민들의 인식도 한 몫을 했다.

뉴욕시 맨해튼 크기의 싱가포르에 서식하고 있는 까마귀는 대략 10만마리. 특히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 집까마귀는 덫이나 미끼로도 쉽게 잡을 수 없어 ‘골칫거리’다.

200여명의 총기 클럽 회원들이 올해 들어 잡은 까마귀는 모두 1만2000마리. 연말까지 2만마리의 까마귀를 잡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총기 규제법에 따라 무기 소지가 엄격히 규제되는 싱가포르에서 이들 만큼은 남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클럽의 무기창고에 보관되어야 하는 총을 클럽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 클럽의 데니스 림 부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는 공원에서 ‘작전’을 펼치지만 “엄선된 사수들만 참여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람을 해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 취미라고 하지만 자원봉사 형식으로 일하면서 까마귀의 피가 묻은 옷을 입은 채로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가야 하는 등 까마귀 사냥꾼의 삶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고 전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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