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士칼럼]허웅/한글날은 민족혼의 결실

  • 입력 2000년 10월 5일 18시 25분


조선왕조실록에는 훈민정음을 만든 사실이 두군데 나타나는데, 그 첫째는 세종 25년(1443년) 12월(음력)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글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훈민정음'이라 한다는 기록이고, 그 둘째는 세종 28년(1446년) 9월(음력)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1926년 조선어학회에서 한글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기 위해 그 날짜를 정하려 했을 때 이 두 기록을 두고 의논을 한 끝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진 날'을 1446년 음력 9월 29일로 잡고, 그 날을 '가갸날'이라 하여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뒤 '훈민정음 해례'가 나타나서, 훈민정음이 이루어진 날이 1446년 음력 9월 상순임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 뒤부터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바꾸어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그 때 일본 침략자들은 우리에게서 군사권 경제권 외교권, 심지어는 우리의 땅덩어리를 송두리째 빼앗아 갔는데, 하나 빼앗기 어려운 것은 우리의 말과 글자이었다. 말과 글이 있는 한 우리를 그들의 노예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 말과 글마저 없애 버리려는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큰 위기감을 느낀 우리 애국지사들은 우리 말과 글을 지킬 뿐 아니라, 우리 글 한글이 귀중한 세계적인 문화 유산임을 나라 안팎에 알리기 위해서 '한글날'을 제정하고, 이 날에 뜻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 글자와 우리 말을 지키고, 우리 말과 글을 더욱더 빛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 한 것이다. 우리 민족정신에 우리 민족혼을 불러 일으키려 한 것이다.

이분들의 이러한 뜻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민족의 대 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은, '가갸날' 을 기념하기 시작한 그 해 (1926년) 12월 7일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였다.

…가갸날에 대한 인상을 구태여 말하자면 오래간만에 문득 만난 임처럼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기쁘면서도 슬프고자 하여 그 충동은 아름답고 그 감격은 곱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바야흐로 쟁여 놓은 포대처럼 무서운 힘이 있어 보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가감과 장식이 없는 나의 가갸날에 대한 솔직한 인상입니다. … 거의 무의식적으로 받은 바 인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직감적 인상 그것이 곧 인생의 모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용운 전집 - 신구문화사 - 1권 386∼7쪽)

나라 잃은 만해 선생에게는 '임'은 '조국'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오래간만에 만난 임처럼… 이라고 한 것은, 이 날을 당해 보니 조국을 찾은 느낌이 앞선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쟁여 놓은 포대처럼 '무서운 힘'이 있어 보인다는 것은 겨레를 지키기 위한 무장-정신무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뜻이다. 만해는 한글에서 조국을 찾으려고 했고, 침략자에 대한 저항정신을 이 안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겨레가 그 때 가진 공동된 느낌이었을 것이다. 물론 친일 부역, 민족 반역자들은 빼놓고….

우리들은 이 정신으로 지금까지 한글날을 기념해 왔다. 광복 뒤에는 정부에서도 이 뜻을 이해하고 동감하여 이 날을 '공휴일' 로 하였다. 한글날이 제 자리를 어느 정도 찾은 셈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 나라 정부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문화부를 독립시켰을 때, 그 문화부의 첫 작품이 한글날의 격하였다. 우리는 문화부에서 응당 한글날을 격상시킬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반대였다. 정말 놀라운, 민족사에 대한 반역행위였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렇게도 이해하지 못하고서야 무슨 문화정책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민족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한글날은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무분별한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한글날은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

허웅(한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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