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스포츠]‘컬러 오브 머니’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41분


폴 뉴먼
황선홍이 돌아온다. 98프랑스월드컵의 뼈아픈 불운을 뒤로 하고 오랜 세월을 부상과 재기의 이중나선으로 반복하던 ‘황새’. ‘치명적인 부상과 투혼의 재기’라는 매우 상투적인 문구를 실로 현실감 넘치는 드라마로 만들며 그가 돌아온다.

물론 그를 두고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게 현실이긴 하다. 한물 갔다는 평가도 많다. 타이트한 대인마크를 하지 않는 J리그에서나 통할 뿐 격렬한 세계무대에서는 역부족인 노장이라는 분석이다. 계륵이라는 표현도 쓴다.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는 노장, 후반 30분 이후의 조커로나 써보자는 얘기다.

그러나 이처럼 인색한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짐작컨대 텔레비전으로 시청한 경우이기 쉽다. 단 한번이라도 경기장에서 나가 그라운드를 가로지르는 그를 본 사람이라면 왜 90이탈리아월드컵 당시 이회택감독부터 지금의 히딩크감독에 이르기까지 역대 감독들이 줄곧 황선홍을 호명하는지를 잘 알 것이다.

김도훈이 천부적인 골 감각을 자랑하지만 황선홍의 볼키핑과 공간 장악력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최용수의 직선 주파도 감탄할 만하지만 대각선으로 질주하며 상대 수비진영을 맘껏 유린하는 황선홍의 파괴력 만큼은 흉내내지 못한다. 오로지 그의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불운에 따른 부상, 언제나 그는 예기치 못한 치명적인 불운으로 월드컵을 향한 열망을 포기했어야 했다.

또 한 명의 사내를 기억해보자. 헐리우드의 이단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컬러 오브 머니’는 일찌감치 전성기를 세월 속에 흘려보낸 내기당구꾼 폴 뉴먼을 주인공으로 한다. 폴 뉴먼은 젊은 시절 로버트 러셀 감독의 당구 영화 ‘허슬러’에서 프로게이머의 생존 논리를 냉혹하게 열연한 바 있는데 이젠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컬러 오브 머니’에서는 신예 톰 크루즈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역으로 물러선다.

그렇지만 냉혹한 승부의 정글에서 버텨온 한 마리 싸움닭으로서 폴 뉴먼의 눈매에는 진정한 승부가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아주 매력적인 시니컬의 미학이 박혀있다. 기억할 만한 장면은 뚱뚱보 흑인 포리스트 휘태커와의 내기 한판. 연전연승을 거둔 휘태커가 열패감에 사로잡힌 폴 뉴먼을 향해 던지는 마지막 대사를 음미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녕 불운의 전사 황선홍의 팬이 될 자격이 있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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