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20∼30代 “집사기보다 전세―월세가 좋아요”

입력 2000-10-01 19:02수정 2009-09-22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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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조재영(趙宰英·31)대리. 보증금 6000만원의 전셋집에 살고 있는 그는 요즘 어떤 차를 살까 고민 중이다. 8년째 타는 쏘나타가 별 무리 없이 움직이지만 부인과 아들을 태우고 나들이를 갈 때 좀 더 좋은 차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주변에서는 “집도 없으면서 새 차가 웬말이냐”는 핀잔도 듣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전세금과 주식에 투자한 돈(4500만원)을 빼고 5000만∼6000만원 남짓 대출을 받으면 집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으려고 매달 100만원 가까이 지출해야 해요. 집을 사려고 허리띠를 졸라가며 청춘을 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집을 사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느는 등 부동산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젊은층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전세나 사글셋집에 살고 남는 돈은 주식 투자나 레저 활동 등에 쓰겠다는 것.

외환위기 후 집값은 무조건 오른다는 ‘신화’가 무너진 것도 내집마련 기피 바람을 부추기고 있다. 중견업체에 다니는 강창훈씨(32·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전세금 1억원 하는 현재의 아파트에서 보증금 5000만원 월세 150만원인 서초구 반포동 44평형 빌라로 이 달 말 이사한다. 돈이 없어 월세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강씨는 “집에 잠기는 돈은 전세금도 아깝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집을 살 생각이 없다는 그는 “주택보급률이 100%에 육박하는 데다 경기도 나빠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신세대의 ‘장래에 대한 의식 변화’를 보다 근본적인 내집마련 기피 원인으로 분석한다. 현대경제연구원 김선덕 연구위원은 “해외유학을 꿈꾸고 언제든 직장과 업종을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평생직장과 안정된 내집마련은 별 의미가 없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식 단기 투자의 확산도 주택 구매 심리를 위축시키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지난해말 주식에 손을 댄 여정기씨(30·공기업 직원)는 “하루에도 수천만 원이 오가는 데이 트레이딩에 익숙해지다 보니 목돈을 장기간 묻어둬야 하는 부동산 투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제일기획이 6월 서울 부산 대구 등 5대 도시에 살고 있는 성인 남녀 3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라이프 스타일 조사’에서도 이 같은 추세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부동산 투자가 재산증식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2.7%로 92년(34.9%)에 비해 12.2% 포인트나 떨어졌다.

집값 상승을 통한 이익을 기대하기 힘들어진 집 주인들도 전세보다는 고정수입이 보장되는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 임대시장이 월세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서울 강남지역에서 보편화된 월세가 용인 수지 등 수도권 남부지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용인 수지의 한 중개업자는 “임대물건의 70%가 월세”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주택 수요자는 소유하기보다 이용하기를 원하고, 집을 임대하는 주인은 고정 수익을 원하는 경향이 보편화되고 있다”며 “월세 증가와 임대시장 확대, 만성적인 전세매물 부족현상 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은우·송진흡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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