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동성애 고백 홍석천 "자유롭게 살고 싶을뿐"

  • 입력 2000년 9월 28일 18시 49분


국내 유명인 중 처음으로 커밍아웃(Coming―out·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한 탤런트 홍석천씨(30)를 만나러 27일 오후 기자가 그의 자취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한창 설거지 중이었다.

홍씨는 별다른 인사말도 없이 5분 동안 정성스레 그릇과 컵 등을 닦은 뒤 한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깔끔하게 자른 멜론 세 조각과 오렌지주스를 내왔다. “어떻게 남자가 이렇게 정갈하냐”고 했더니 그는 “커밍아웃한 뒤 일간지와 첫 인터뷰라 생각할 시간을 벌려고 그랬다”며 오히려 기다리게 한 것을 미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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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커밍아웃할 필요까지 있었나.

“그동안 고통스러웠다. 내 커밍아웃은 ‘성(性) 정체성 확립’과 같은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살면서 ‘기본적인 감정’을 억눌러야 했던 심정을 아나. 남의 시선 의식하느라 남자친구와 손잡고 영화 보러 갈 수도 없고 맘놓고 식사할 수도 없었다. 나의 가장 큰 목적은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려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방송활동도 순탄하고 CF도 할 정도로 ‘잘 나가는’ 시점을 택했나.

“왜 고민이 없었겠나. 내가 뭐 잘났다고…. 예상대로 MBC ‘뽀뽀뽀’ 제작진이 ‘해고’ 통보했고 10월부터 출연예정이던 KBS라디오 시트콤에서도 빠졌다. 막상 먹고사는 게 가장 걱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사랑했던 네덜란드인 남자친구와 지난해 ‘현실적인 문제’로 헤어진 뒤 더 이상 나를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8월 KBS의 한 프로그램 촬영 때 “여자친구보다 남자친구가 더 많다면서요”라고 묻기에 “동성애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목은 편집 때 잘려나갔지만 어떤 식으로든 소문이 날 것으로 보고 그 때부터 커밍아웃 시점을 고민해 왔다.

―주위 사람들 입장도 생각해봤나.

“커밍아웃은 이기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솔직히 나 하나 편하 자는 것이다. 커밍아웃 이후 고향(충남 청양)의 부모님은 ‘호적에서 파내겠다’며 어쩔 줄 몰라 하셨다. 가장 죄송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아직 ‘동성애〓변태’의 시각을 가진,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까지 ‘90년대 중반부터 동성애를 했고 중학생 때 동성 친구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식으로 일일이 설명할 생각은 없다. 나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걸로 족하다.”

“데뷔 이후 요즘처럼 전화 많이 받기는 처음”이라는 그는 대화 도중 대여섯 차례 걸려온 인터뷰 요청 전화에 ‘그저 영혼의 문제라고만 알아달라’며 모두 끊었다. 지난 주말 자신이 출연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부산공연 뒤 쫑파티 때는 많은 사람이 다가와 ‘용기 있더라’며 아는 체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커밍아웃을 ‘계산된 행동’으로 보는 눈길도 있다.

“당분간 방송활동을 할 수 없다 보니 내 경험을 수기로 써보려는 생각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누드사진까지 곁들인 서갑숙씨의 수기처럼 잘 팔리겠나. 그것도 아직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은 내용으로. 앞으로 커밍아웃 전보다 잘 벌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무명시절 연극판에서 석달에 30만원 받고도 산 경험이 있으니 몇 년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방송가 지인들은 뭐라던가.

“‘너무 빨랐다’는 말이 많았다. 확인되진 않았지만 대중문화계 선배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는데 왜 앞서서 ‘사회적 생명’을 갉아먹느냐는 거다. 그러나 연예인으로서 자리가 더 탄탄해진 뒤에는 (커밍아웃) 기회가 점점 멀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이 나이에도 (쌓아놓은 게) 아까웠는데…. 아무튼 난 지금 너무 편하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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