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농어촌폐교 무분별 매각 논란

  • 입력 2000년 9월 25일 18시 50분


충남 보령시 오천항에서 배로 40분 거리인 자그마한 섬 추도. 행정구역상으로는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리에 속한다. 24일 이 섬에서 만난 주민 전종래(全鍾來·60)씨는 외지인에게 팔린 광명초등학교 추도분교 얘기를 꺼내며 흥분했다.

“30년 전 섬에 학교가 들어선다기에 마을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헐값에 내놓았지유. 자식들에게 배움의 길을 터 주려고 모두 나서서 길도 내고 비탈진 산도 다졌는디 이제 와서 학생수가 부족하다고 외지인들에게 팔어유….”

추도분교는 71년 동네 사람들의 정성과 땀으로 개교했다가 학생수가 줄어 결국 24년 만인 94년 폐교됐다. 마을 한 가운데 1200평의 대나무숲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이 분교에는 한때 인근 섬에서 등교하는 학생을 포함해 학생수가 20명에 이르렀다.

폐교 이후 이곳은 주민들의 마을회의나 체육대회 공간 등으로 활용되다가 지난해 충남 천안의 한 기업인에게 1억6100만원에 팔렸다.

전씨는 “시집간 딸을 비롯해 이 학교 졸업생 80명이 학교가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가슴 아파했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추진중인 산간벽지 및 도서지역 폐교 매각사업이 이곳 주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추도의 이웃 섬 월도에 있던 광명초등학교 월도분교도 지난해 7월 입찰을 통해 육지에서 횟집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8000만원에 팔렸다. 이 섬의 촌장격인 최월식(崔月植·63)씨가 교육청의 매각공고가 나오자 감정가(2100만원)보다 높은 3200만원을 써냈으나 역부족이었다.

최씨는 “외지인에게 우리 자녀들이 글을 배운 학교를 넘겨줄 수 없어 응찰했었다”며 “돈 때문에 섬마을 아이들의 추억을 저버리게 하는 게 과연 교육적인 처사냐”고 비난했다.

이 마을 야산 정상에 있는 1000여평의 월도분교 교정에는 학생들 대신 어른 키 높이의 잡초만이 무성했다.

현재 전국의 폐교시설은 2031개. 이중 매각됐거나 매각이 추진중인 학교는 820곳.

충남도교육청의 경우 지난해 13개교를 매각한 데 이어 올해도 31개교를 매각해 40여억원을 받았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폐교의 경우 현지인에게 우선 수의계약으로 매각하거나 임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폐지된 학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폐교를 구입할 만한 경제력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 때 ‘돈만 있으면’ 누구나 폐교 매입이 가능하고 매각 이후 현지인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는 별장 등이 들어서도 이렇다할 규제방안이 없는 게 문제다.

보령시의 도서지역이 선거구인 충남도의회 이준우(李峻雨·54)의원은 “경제논리만을 내세운 도서지역 폐교 매각 및 임대 방침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며 “도서지역의 경우 문화시설이 절대 부족한 만큼 문화놀이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이기진기자>doyoce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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