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진미석/'박사후 과정' 더 만들어야

  • 입력 2000년 9월 9일 17시 05분


최근 20여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박사의 수가 10배 이상으로 급증했으나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 증가는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정규직에서 일을 하지 못하는 박사들이 매년 수천명씩 생겨나고 있다. 대학 졸업 이후 적어도 6∼7년 이상의 기간, 수천만원에 이르는 교육비, 과정을 이수하고 논문을 쓰는 데 쏟은 정신적 육체적 노고 등의 대가로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에,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하지 못하는 많은 박사들은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의 문제는 개인적인 손실일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손실을 의미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양질의 인력 확보와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는 지식기반산업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의 핵심적인 요소가 고급 인적자원의 양성과 그들의 효과적 활용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최고급 인적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박사 인력의 취업난은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관점에서 그 심각성이 인식돼야 한다. 따라서 박사 인력의 효과적 활용방안과 향후 박사 인력의 수요와 공급 균형화를 위한 방안이 적극 모색돼야 한다.

이미 배출된 박사들의 인력 활용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요청되는 방안은 현재 정규직을 갖지 못한 박사들 대부분의 일자리인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이다. 현재 강사들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강사료를 받고 있으며 신분도 ‘일용 잡급직’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적어도 1∼2년 단위의 계약제 전임강사, 강사 연봉제 도입 등을 통해 그들의 경제적 신분적 지위를 개선해 주어야 한다. 강사의 처우 개선은 학문적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 시기에 있는 박사 강사들에게 양질의 연구와 강의에 몰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 주는 데 필수적이다. 이는 대학교육의 질 제고와 아울러 강사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강사를 교육법상 교원의 지위로 인정하는 법적 조치와 박사 인력의 공급처이기도 한 대학의 적극적 지원이 요청된다. 아울러 박사들의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학술진흥재단의 포스트닥(박사 후 과정) 지원 제도를 확대하고, 국책연구소 및 민간연구소 자체적으로 포스트닥 과정 증설을 통해 박사들의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그들의 연구결과를 기관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 이외에도 산업체 학교 공공기관 연구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박사 인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박사 인력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박사 인력 구인―구직 연결 정보사이트를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의 박사 취업난 문제에서 앞으로의 박사 양성과 활용에 관련된 주체들, 즉 정부 대학 개인들은 중요한 시사를 얻어야 한다. 정부는 박사 인력의 수급 균형을 위해 대학이나 개인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학문분야별 공급현황과 수요현황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연구를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박사 인력의 수급 전망에 대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대학들도 박사학위 취득까지만 대학 소관 사항이라는 자세에서 벗어나 학위 취득 이후의 취업전망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 수요전망을 고려한 학위과정 개설이나 정원 조정에 대해 노력하고, 졸업생들의 취업지원을 위한 정보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은 일단 박사학위를 따겠다가 아니라 향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잘 설계한 뒤 박사과정 입학을 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필자는 미국 하버드대 박사학위 취득 이후 15학기의 시간강의와 13번의 채용응시를 거치면서, 박사과정 첫 학기 첫 시간 강의에서 “이 분야의 박사학위는 투자한 비용에 비해 경제적 대가는 그에 못 미치니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는 교수의 말을 잘 새겨들을 걸 하는 후회와 투철하지 못했던 나의 박사학위 선택과정에 대한 반성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고려하는 학생들에게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20, 30대의 6∼7년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박사학위는 대단히 비싼 기회임을 잊지 말고 전공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진미석(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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