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이박사 신드롬 "흔들지 않고는 못 배겨!"

  • 입력 2000년 9월 4일 18시 59분


인기 장르와 가수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가요계에 홀로 유유자적하는 듯한 가수 40대 후반의 가수 이박사. 여러 팬클럽의 충성도도 높고 그 연령대가 광범위하다. 이전 세대의 가락이라 할 수 있는 ‘뽕짝’으로 n세대에 어필하는 드문 가수다.

올해 4월 등장한 그의 국내 팬클럽은 14개, 전체 인원은 9800여명에 이른다. 일본에는 7만2000여 ‘공식 팬’이 있다. 국내 첫 음반이 7월말에 나왔다. 그는 벌써 2편의 TV광고에 출연했고 그의 노래를 담은 3번째 광고도 제작 중이다. 2002년 월드컵 주제가 가수로 그를 선정하자는 캠페인까지 등장했다.

‘스페이스 판타지’. ‘테크노 뽕짝’을 주창하는 노래로 노래방의 인기곡 중 하나다. 전자음의 기계적인 무한반복(Looping)을 통해 몽환적 세계를 탐구하는 첨단 댄스음악 ‘테크노’와 구성지고 애상적인 음율의 한국 전통가요 트로트를 속칭하는 ‘뽕짝’의 합성.

그 이율배반적인 사운드를 결합한 이박사. 47세에 키 1m60, 몸무게 45㎏의 왜소한 체구의 아저씨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의 신바람 이박사라고 합니다’라는 인트로와 함께 시작하는 그의 음악은 내용상으로는 트로트와 민요, 형식으로는 메들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쯤되면 귀가 번쩍뜨이는 이들도 있으리라. 대한민국의 아줌아 아저씨들이 탄 관광버스를 모두 달리는 무도장으로 둔갑시키는 괴력의 그 음악.

이런 성인문화의 ‘하위장르’ 격인 그의 노래가 도대체 어떻게 10대 중심의 주류음악에 편입됐단 말인가.

첫째는 그의 음악이 지닌 하이브리드(잡종교배)적 속성이다.

그의 음악은 한국적 정서가 녹아있는 ‘강원도아리랑’나 ‘뱃노래’ 등의 민요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곡조가 같은 트로트를 메들리로 결합하고 다시 빠른 박자를 바탕으로 디스코를 건너 테크노까지 치닫는다. 특히 원곡을 카피한 뒤 이를 변환시키는 테크노의 샘플링 기술과 만나면서 일본의 엔카는 물론 로큰롤까지 집어삼키는 불가사리로 변신했다. 여기에 ‘좋다’나 ‘요시(일본어로 좋다는 뜻)’ 등의 추임새는 물론 즉흥가사까지 자유자재로 구사, 랩의 성격까지 띤다.

둘째는 중독성이다.

그의 음악은 어떤 테크노 댄스 못지않게 빠르다. 그의 분당 박자수(bpm)는 170∼180. 이정현의 테크노댄스곡 ‘와’의 분당박자수가 140인 것과 비교하면 그 빠르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쿵작쿵작하는 트로트 리듬이 심장박동처럼 울리면서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특징이 있다. 분절된 전자음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테크노와 일맥상통한다는 분석이다.

팬클럽회장인 이종빈씨(29·광고회사이사)는 “4년전 미국유학 때 일본친구로부터 이박사님의 앨범을 선물받고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온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만큼 신나는 음악은 거의 중독성 반응을 일으켰고 어떤 무대든 거리낌없는 이박사의 카리스마는 그 어떤 가수들과도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N세대가 이박사님의 음악에 빠져드는 것은 기존 대중음악의 가치를 전복하는 엽기적 매력에 있다”고 말했다.

셋째는 유통경로다.

89년 관광버스 가이드로 관광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시작한 그의 독특한 노래를 3시간만에 녹음해 낸 ‘신바람 이박사 1집’ 테이프는 리어카 시장을 통해서만 석달만에 40만개가 팔렸다. 그후 모두 19개의 테이프를 내면서도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러야 했던 그가 ‘지상’으로 나온 것은 95년말 일본 소니사에 스카우트돼 일본에서 음반을 내면서부터였다.

일본 엔카의 느릿한 음율에만 익숙했던 일본인들에게 그의 음악은 ‘경이’였다. 우리의 세종문화회관에 해당하는 도쿄(東京)의 부도칸(武道館)에서 단독공연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그는 조용필 이후 일본에서 한국어 가사로 가장 많은 음반판매량을 기록한 가수가 됐다.

일본의 이박사 열풍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으로 역수입됐다. 일본의 음악사이트를 점령한 그의 MP3 음악파일이 국내에 확산된 것. 특히 ‘청산유수’가 삽입된 영화 ‘거짓말’의 무삭제판이 네티즌 사이에 급속 확산됐다.

결국 리어카라는 아날로그적 유통망을 타고 흐르며 중년을 사로잡던 그의 노래가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간을 통해 역유입되면서 n세대의 문화코드로 부활한 것이다.

그의 음악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이박사가 문화전면에 재등장한 것을 한국가요계의 명백한 퇴행의 상징으로 본다.

“트로트는 50년대는 맘보, 60년대는 트위스트, 80년대초는 디스코와 끊임없이 결합해왔다. 메들리 역시 김연자의 ‘노래의 꽃다발’이나 주현미의 ‘쌍쌍파티’에서 이미 낯익은 것이다. 그런 음악이 주류시장에 진입했다는 것은 가요시장이 10대 위주의 상품화전략에만 놀아나다 기본적 방어력까지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국내에 새롭게 소개한 테크노 뮤지션 달파란(본명 강기영)의 비판은 차원이 좀 다르다.

“이박사의 음악에 주목한 것은 순수에 가까운 통속성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의 음악은 고속도로 뽕짝테이프를 벗어나 주류시장에 진입하면서 그 고유한 오리지널리티를 잃고 테크노 흉내를 내고 있다.”

이박사의 음악을 사회통념을 벗어나 가학적 피학적 자극을 꾀하는 ‘엽기’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한번 듣고 버리는 가장 통속적 소비문화를 지칭하는 ‘키치’로 볼 것인가. 그것은 결국 그의 인기의 지속성을 말해줄 시간에 달린 듯 하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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