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기적의 사나이' 이형택, US오픈 16강

  • 입력 2000년 9월 3일 15시 27분


"처음에는 우연이나 행운인 줄 알았다. 당연히 초반 탈락을 예상했다.귀국하는 항공편과 호텔 체크아웃도 아예 지난주 초로 잡아놨다.마침 3일은 할머니 생신. 탈락하면 빨리 집에 돌아가 강원 횡성 우촌면의 집에서 모처럼 온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했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출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설레던 한국의 한 산골 청년이 지금 세계 테니스계를 뒤흔들고 있다.

'기적의 사나이' 이형택(24·삼성증권).

한국 남자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1회전 통과를 이룬 그의 힘찬 발걸음이 거칠 것 없이 신천지를 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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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잇따라 고꾸라뜨린 '다윗의 돌팔매' 는 이제 당당히 세계 최강의 숨통을 겨누고 있다.

3일 미국 뉴욕 플러싱메도 국립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올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총상금 1000만달러) 남자단식 3회전.

세계 182위로 예선 통과자인 이형택은 세계 67위 라이너 슈틀러(독일)를 3-1(6-2, 3-6, 6-4, 6-4)로 꺾고 4회전(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이형택은 81년 US오픈 여자단식의 이덕희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메이저 4회전을 밟은 한국선수가 됐다.

4회전 진출만으로 그는 95년 프로 데뷔 후 벌어들인 통산상금 9만8021달러의 절반도 넘는 5만5000달러를 확보했다. 또 165점의 세계 랭킹 포인트를 따내 역대 한국 남자선수 최고인 김봉수(129위)를 뛰어넘어 110위권까지 오르게 됐다.

세트 스코어 2-1로 앞선 이형택은 4세트 들어 1-4까지 뒤져 승부를 원점으로 돌릴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위력적인 그라운드 스트로크를 앞세워 내리 5게임을 낚아 승리를 결정지었다. 이날 이형택은 32개의 위닝샷을 날려 27개의 슈틀러를 눌렀으며 범실에서도 43-51로 우위를 보이는 등 정상급 기량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일약 이번 대회 '태풍의 핵' 으로 떠오른 이형택은 5일 오전 코트의 제왕 피트 샘프러스(29·미국)와 8강행을 다툰다.

US오픈에서만 4차례 우승한 샘프러스는 통산 메이저 13승의 대기록을 갖고 있는 강력한 우승후보. 이형택에게는 물론 넘기 힘든 버거운 상대인 게 틀림없는 사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톱시드 아가시, 2번 시드 쿠에르텐, 5번 시드 카펠니코프 등 톱랭커들이 초반 탈락의 비운을 맛본 것을 보더라도 이변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져도 그만 (?)인 이형택이 부상으로 절정의 컨디션은 아니라는 평가를 듣는 샘프러스를 얼마든지 제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메인 코트인 아더 애시 스타디움에서 미국과 아시아 유럽 등 전세계 주요지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샘프러스와 맞대결을 펼치는 이형택. 그는 과연 또 다른 신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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