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판문점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08분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 장단군 널문리. 6·25전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목, 초가집 몇 채만 있던 주막거리였다. 한적한 농촌이던 이곳이 세계적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1951년 10월25일 휴전회담이 열리고 부터다. 약 2년 후인 53년 7월27일 유엔군대표 해리슨중장과 북한측 대표 남일소장은 이곳에서 불과 12분만에 휴전협정에 조인한다. 민족 상쟁과 비운의 상징인 판문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남북한의 칼날같은 시선이 오가는 판문점. 그곳은 민족 애환의 장소다. 53년 8∼9월, 국군과 인민군 포로들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넘어 각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갔다. 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판문점에서 있었던 각종 남북한 접촉은 언제나 민족적 관심과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76년 8월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의 ‘도끼만행사건’등 숱한 무력 충돌사건이 발생해 가슴을 조이게 한 곳도 판문점이다. 판문점은 이처럼 전쟁과 평화의 두 ‘얼굴’을 가진 곳이다.

▷이제 그 판문점이 진정한 평화의 장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96년 업무가 중단된 남북간 판문점 연락사무소가 4년만인 오늘 복원된다. 남북연락사무소는 92년 5월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과 북측 판문각에 설치됐다가 북측이 기본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철수했던 남북간 대화 통로였다. 이 연락사무소는 당장 8·15 이산가족 방문 관련 업무와 이달 말 평양에서 열기로 한 제2차 장관급회담 준비를 위한 일에 매달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오늘부터 열리게 되는 남북한간의 광(光)케이블시대도 판문점이 그 접목 역할을 맡고 있다. 판문점 평화의 집과 판문각 사이 1㎞를 연결함으로써 서울과 평양간의 광통신망이 가동됐다. 판문점 연락사무소가 우선 이 통신망을 이용한다고 한다. 여기에다 올해 안에 도로로 개성을 관광할 수 있게 한다는 현대측 청사진도 나왔다. 개성으로 가는 길엔 판문점이 어차피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되어 있다. 민족 화해 시대를 여는 장소 판문점이 이산가족의 한을 푸는 ‘역할’도 해주기를 기대한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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