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현장21]한중전 관중석에선 무슨 일이…

  • 입력 2000년 8월 9일 00시 36분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 궁런경기장에서 열린 한중국가대표 정기 평가전 당시 한국 응원단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8일 연세대 홈페이지에 일본의 스포츠 신문기자가 썼다는 '중국관중의 한국관중 폭행사건'에 관한 글이 올라오면서 사이버 세상에서는 폭행사건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위 닛칸스포츠 기사는 허구

닛칸스포츠 모리야마기자의 칼럼 형식으로 돼 있는 이 글은 "중국관중들은 이영표(24·안양LG) 선수가 한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는 한국응원단을 향해 쓰레기 봉지 물병 오물등을 던지기 시작했다.이들은 한국관중들에게 발길질은 예사였고 태극기를 빼앗아 발로 뭉개기까지 했다. 1대0 한국 승리로 경기가 끝난뒤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한국응원단을 수천명의 중국인들이 에워싸고 발길질 주먹질을 했다.제일 충격적인 것은 여자의 머리를 붙잡고 땅으로 끌고 가슴을 발로 짓누르는 등 눈 뜨고 보기 힘든 참혹한 모습이었다”는 게 요지다.

그러나 동아일보 심규선 도쿄특파원의 현지 확인 결과 닛칸 스포츠에는 모리야마라는 기자가 없으며 닛칸스포츠는 한중전 당시 중국에 취재 기자를 보내지 않았으며 관중 난동사건에 관한 기사를 보도한 사실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유학생 글 계기로 국내 전파

이에 앞서 중국관중들로부터 직접폭행을 당하고 집단폭행 장면을 목격했다는 중국유학생 김모씨를 비롯, 몇몇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글이 8월1일을 전후해 국내 사이트에 올라왔다.

김씨의 글이 지속적으로 복사돼 번져나가는 시점에 올라온 일본기자의 글을 보고 흥분한 일부 네티즌들은 '일본기자'의 글을 계속 전파하고 있다.

△8일부터 중국 성토 빗발

주중 한국대사관 홈페이지는 8일 이른바 일본기자의 글이 올라오면서 중국관중을 성토하는 한국인들의 글이 폭주했다.

이들 중에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심한 욕설을 퍼 붓는 경우도 있어 대사관측은 심한 내용을 가려내 부분적으로 지워야 할 정도다.

주중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축구경기 다음날인 29일 몇몇 교민이 중국관중의 '심한 행동'을 나무라는 글이 올렸으나 내용이 대수로운 정도는 아니었으며 유학생 김모씨의 글이 옮겨진 뒤 교민들이 항의가 빗발쳤다는 것이다.

대사관측은 중국관중들의 '집단폭행'과 욕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보고 중국외교부에 유감을 표하는 서한을 보내는 한편 피해사례를 신고받기 시작해 지금까지 1건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는 대사관의 조치가 알려지면서 잠잠해지는 듯 했으나 8일부터 다시 불거졌다.

△한국기자들은 호텔로 철수

당시 한국기자들은 경기장내 기사 송고시설이 없어 호텔로 철수, TV를 통해 경기를 보고 송고하는 바람에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28일 한중전을 취재한 4개 스포츠신문 축구기자들은 모두 폭행사건에 관한 소문을 중국현지 혹은 서울에 도착해 들었으나 현장에 없어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A사 기자는 이와 관련해 "28일 중국측이 구장 내에 전화선 등 취재여건을 마련해주지 않아 한국기자들은 전반전만 관람하고 나와 호텔에서 기사를 전송했다"며 "서울에 도착해 경기종료후 폭행사건 소문 얘기를 들었으나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B사 기자는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28일 밤 전해들었지만 사실 확인은 못했다"며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상황이 경기 종료 후라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목격한 한국기자는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C사 기자도 "28일 저녁 마찰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당시 현장에 없었으므로 확인 취재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D사 기자 역시 "얘기는 들었지만 현재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수준의 폭행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라이벌 국가간 경기때 흔히 있는 마찰 정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당시 현장 상황을 얘기해 줄 한국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

당일 경기장에 있었던 재중국 한국인회 관계자는 "약 250여명의 한국 응원단에게 깡통과 돌맹이가 날아오긴 했으나 직접적인 폭행은 목격하지 못했다"며 "그런 정도의 일은 한중전을 할 때마다 늘 있어왔던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응원을 하던 한국 학생들에게 인솔자로서 귀가시 주의사항을 주고 집으로 아무일 없이 돌아왔다.

그는 인터넷에 올라 온 글들을 보고 깜짝 놀라 한인회를 통해 피해신고 접수에 나섰으나 아직 한건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폭행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얼마나 심각한 정도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었던 '붉은악마'중국응원단 단장 유영훈씨는 "당시 한국응원단은 좌석배치상 여러 군데 떨어져 앉아 다른 쪽에 앉은 한국사람들의 상황은 알 수 없었다"며 "당시 응원현장에 있긴 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몰랐고 서울에 와서 이런 내용을 접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응원온 현지 유학생들과는 경기장 앞에서 헤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유씨는 "당시 붉은악마 응원단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응원했기 때문에 욕설을 듣거나 물병을 맞는 일은 있었다"며 "중국의 낙후된 응원문화를 볼 때 폭행사건의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순 없다"고 추정했다.

유씨는 또 '붉은악마' 응원단은 작년 상해에서의 경기때 응원경험이 있어 중국의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일부러 붉은 옷을 입지 않고 응원도 자제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서 중국인들과 마찰이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한중전을 관람했던 대한축구협회 김형룡 차장은 "협회 임직원 여럿이 현장에 계속 있었지만 이 같은 일은 없었다"며 "떠도는 얘기들이 거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차장은 "사실 확인이 된다면 중극측에 공식 항의서한도 보내고 하겠지만 확인조차 안되고 있는 상태에서 지금은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축구협회의 입장을 밝혔다.

김차장은 또 현재 이와 관련해 시민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어 업무에 혼선을 빚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차장은 앞으로 우리나라 응원단의 해외원정시 이러한 사건이 실제 일어날 것을 대비해 보호책을 마련하는 등 사전준비를 철저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티즌들 진상조사 촉구

9일 오전10시에 개설된 동아닷컴 기사 ‘한중전 관중석에선 무슨일이…’의 독자게시판에는 개설과 동시에 연달아 글이 올라, 한중전을 둘러싼 네티즌들의 관심을 반영했다.

의견의 내용은 중국인들의 관전문화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나 대사관의 적극적인 대응 촉구, ‘한중전을 없애자’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다. 그러나 확실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는 네티즌 모두 의견을 같이 했다.

이효성(ID)씨는 “인터넷의 무책임성, 정확성의 결여 문제와 관련해 생각해보면 원칙과 이성에 입각한 대처가 절실하다”며 “과민반응으로 양국 정부간 국민간에 오해의 여지를 줄 것이 아니라 일부 단체에서 추진하는 피해사례 접수와 같은 방법으로 차분히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남인목사(ID)는 “중국 사람들이 텃세를 부렸다면 이는 양국 스포츠 뿐만 아니라 전통적 우호관계에 있는 양국 국민정서에도 막대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우선 사실규명부터 해서 왜 그동안 이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는지도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닷컴 특별취재반 jin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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