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델라신 부녀스토리]"치맛바람보다 센 바짓바람"

  • 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39분


뛰어난 스포츠 스타의 뒤에는 흔히 억척스런 아버지가 있기 마련이다.

지난달 31일 끝난 미국LPGA투어 자이언트 이글 클래식에서 우승한 필리핀계 도로시 델라신(19.미국). 올해 프로에 뛰어든 델라신은 전문 캐디가 없다. 대신 아버지 아르세니오가 캐디를 맡아 함께 투어를 돌고 있다. 카페트 세탁소를 경영하던 아르세니오는 딸의 캐디백을 메기 위해 아예 가게문을 닫았다. 캐디백도 다른 프로들과는 달리 삼각대가 부착돼 있는 주니어용이다. ‘집시 골프’라는 브랜드로 그 가격은 150달러 정도. 아버지 어깨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가장 가벼운 제품을 골랐다.

8세 때 델라신에게 처음 골프를 가르치는 시작한 사람도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골프를 시작한 델라신은 아마추어 때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지난해에는 최고 권위의 제99회 US여자아마추어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재미교포 강지민을 꺾고 우승했다. 미국LPGA 퀄리파잉 스쿨에서도 공동 4위로 단번에 통과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을 높았든지 데뷔무대인 올해 18개 대회에서 7차례나 컷오프에 걸렸고 ‘톱10’ 진입도 단 한차례 밖에 없었다. 스폰서 하나도 없는 어려운 처지였으나 골프공 마다 새겨둔 스마일 마크를 쳐다보며 웃게 될 날을 기약했다. 그러던 끝에 지난달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공동 12위에 오르며 상승세를 탄 여세를 몰아 마침내 꿈에 그리던 첫승을 거뒀다. 우승을 확정짓는 퍼팅을 성공시킨 뒤 델라신은 아버지와 깊은 포옹을 하며 마음 고생을 털어냈다. 19세의 나이로 미국LPGA투어에서 25년 만에 최연소 우승이었다.

챔피언 등극으로 프로에서 벌어들인 총상금보다도 많은 15만달러를 챙긴 그는 남은 시즌 출전 경비로는 충분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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