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저급 코미디政治'

  • 입력 2000년 7월 26일 18시 41분


“현장은 시시각각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저는 300여명을 지휘하면서 물샐틈없이 보초를 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의장이 ‘날았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몇 명을 승용차에 대기토록 한 뒤 모두 떠난 것처럼 정숙을 유지했습니다. 그러자 옆집에 숨어있던 부의장을 태우기 위해 스타렉스(밴)가 도착했는데 1초 늦게 나오는 바람에 결국 잡을 수 있었습니다.”

탈옥수 신창원을 검거한 경찰관의 무용담이 아니다. 이는 25일 김종호(金宗鎬)국회부의장 자택 봉쇄조 ‘현장 지휘관’으로 김부의장 ‘검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의원이 26일 의총에서 밝힌 ‘상황보고’의 요지다.

국회 출입기자들은 적어도 25일 하루 동안은 형사사건을 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날 정치기사가 ‘야당의원의 의장공관 및 김종호 부의장자택 농성→김부의장의 탈출 시도→극적인 김부의장 재검거’에 이르는 과정이 주조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25, 26일자 조간신문 정치면은 ‘탈출’ ‘농성’ ‘검거’등으로 장식됐다.

실제로 김부의장 ‘재검거’ 여부에 따라 국회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다. 만약 김부의장이 ‘탈출’에 성공했다면 여당에 의한 국회법 등의 본회의 날치기 처리가 예상됐으나 그가 야당 의원들에게 다시 잡힘으로써 여당의 이런 시도는 완전히 무산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한때 김부의장 ‘구조대’를 보내려는 방안까지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농성중인 야당 의원들과 충돌할 경우 부상자가 나올 것을 우려해 그만두기도 했다.

이날 연출된 상황은 우리 정치가 ‘논리의 충돌’이 아닌 ‘몸과 몸이 부딪치는 전투’에서 탈피하지 못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2000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벌어진 이런 모습은 해외토픽 감이라는 말도 나왔다. 우리 정치는 언제쯤 이 같은 ‘저급 코미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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