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용근금감위원장 "44개 워크아웃기업 정리"

  • 입력 2000년 7월 16일 18시 55분


《사상 초유의 은행노조 파업이 노정(勞政)간 대타협으로 막을 내렸다. 전통적인 화이트칼라의 파업은 집단이기주의의 표출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타협에 이르는 과정에서 관치, 과거 정책 실패 등이 도마에 올랐고 ‘시장 자율 시대에 맞는 바람직한 갈등 해결 구조는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의문부호를 우리 경제에 던졌다. 대타협의 한쪽 당사자인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은 요즘 기분이 좋다. 어려운 협상을 잘 마무리했다고 3부 요인에게 격려 전화까지 받았다. 동아일보 금융부 박영균 부장이 그를 만나 그간의 합의과정과 향후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이위원장은 “노조도 어떤 측면에선 비정부기구(NGO)인 만큼 얼마든지 정부에 정책 건의를 할 수 있다”며 “그러나 파업이란 극한 수단을 사용한 것은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얘기로 시작해보자. 노조 요구사항 중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부분은?

“파업기금이 걷히는 것을 보고 파업은 피할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파업 당일 타결됐으면 했고 이틀을 넘기면 장기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조가 내건 관치는 명분일 뿐 고용안정에서 실리를 찾을 것으로 확신했다. 구조조정을 하지 말자는 얘기인데 이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난제였다.”

―정부가 이번에 강제로 인원을 조정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는데 오히려 노조에 설득당한 게 아닌가.

“2차 구조조정은 시장이 주도하지 정부는 구조조정을 위한 환경과 제도는 유지해야 한다. 그 핵심은 은행들의 경영환경을 개선하고 수익기반을 구축해주자는 것이다. 노조도 ‘정부가 사람 자르는 것만을 목표로 하진 않는구나’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

―협상 당사자중 은행장이 없어 모양새가 안 좋았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일관되게 정책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았나.

“노조가 복지나 고용안정 보수문제 등을 들고나오면 기본적으로 노사문제다. 그러나 이번엔 이례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건의사항’을 제시해 노정협상이 됐다.”

―노조가 관치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결국 총리훈령 등을 통해 개선키로 했다. 그렇다면 관치를 인정하는 것 아닌가.

“시장감독과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만든 채권전용펀드나 채권안정기금이 자본시장 안정에 기여한 것은 시장이 알고 있다. 이를 관치라 하면 정의가 잘못된 것이다. 앞으로도 시장복원과 관치를 정확히 구분해 사용하겠다. 현 정부는 은행여신에 개입한 적은 없으나 과거 ‘관성 탓’에 지금도 그러려니 한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노조는 관치청산법 제정을 제기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 관치금융법이 있느냐, 법이 강제할 대상이 없는데 법을 제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고 총리훈령도 우리는 ‘현 정부 들어 관치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음’을 과시하기 위해 받아줬다.”

―지주회사법은 사전에 정부가 철저히 준비할 수 있었다고 본다. 공적자금 투입 은행에 대한 처리방침이 나온 뒤 지주회사법 문제가 나오는 바람에 노조의 반발이 거세졌다. 말바꾸기 논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주회사는 대형 겸업화 등을 위해 필요한 제도다. 다만 홍보가 부족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번 논란을 통해 우리말 표현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동안 나는 줄곧 강제적 합병이나 인원 감축은 없으나 경영개선 차원에서 노사간에 합의한 인원 감축은 불가피하다고 얘기했다. 이를 거두절미해 보도하는 바람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까지 ‘인원 감축은 없다는 발언을 했느냐’고 물어와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실수할 수 있습니까’라고 해명했다.”

―조흥 한빛 서울은행 등 공적자금 투입 은행 처리방침을 약속했다는 이면합의설이 제기됐다. 협상과정을 설명해달라.

“노조는 우리측 제안을 다 바꾼 수정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조흥 한빛 서울은행은 지주회사 적용을 2년간 배제한다는 식이었다.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에게 ‘이러면 우리 둘 다 바보가 된다. 만인에 평등해야 할 법에 고유명사를 넣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면 합의 운운해서 정색을 하고 ‘이런 인식을 나눌 수 있지만 공직자 입장에서 특정은행에 대한 약속을 할 수 없다’고 잘랐다. 이용득위원장이 ‘명분이 없다’고 해서 ‘어차피 지주회사로 갈텐데 강제합병 안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설득했다. 이 과정에 꼬박 3시간10분이 걸렸다.”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 이기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간에 알력이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정협상 막바지에도 이장관에게 결렬 책임을 떠넘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성도 같은 사람끼리 미워할 것이 무엇이 있나(웃음). 내가 버티자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갔다. 노조측 안대로라면 금융체제가 무너지겠다는 우려가 퍼뜩 들어 당초안대로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핑계를 댄 것이 ‘법 개정사항인 만큼 이헌재장관과 상의는 거쳐야겠다’고 말한 것이 와전됐다. 나중에 이장관에게는 ‘시간을 벌려고 핑계를 댔다’고 해명했다. 이수석과도 ‘노조에게 파업 철회 명분을 주지만 우리 계획대로 된다’고 설명했다.”

―합의문을 보면 추가 은행 퇴출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은행을 살리려면 공적자금 지원이 불가피한데….

“정부에 의한 강제퇴출은 없다. 그러나 경영자끼리 합병 제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의도하는 것도 아니다. 은행장들이 업무 특화, 인력 재배치, 인력 감축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추가퇴출은 없을 것이다. 부실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돈을 쏟아붓지 않는다. 공적자금 투입 은행이나 독자생존이 어렵다는 은행은 자구계획을 제출받아 경영평가위원회가 심사한다. 외국인들을 포함한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는 일절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내놓는 평가 결과에 따라 정부는 액션만 취하면 된다. 평가위원들을 대통령이 직접 선정하도록 할 계획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모두 지주회사에 묶이게 되나.

“그렇다. 충분한 자구 노력과 책임 분담을 전제로 충분한 공적자금을 지원하지만 그 전제는 지주회사 편입이다. 당초 재경부가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8%까지 올리기로 했지만 어차피 살릴 은행이라면 10%가 안전하다고 했다. 공적자금이 얼마나 투입될지는 9월쯤 짐작할 수 있다”

―예금보장한도를 조정할 수 있는가.

“현행 2000만원은 사실 구조조정이 완결됐다는 의미에서 책정한 수준이며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향후 구조조정 진척도, 은행간 자금 이동, 자금 경색 현상, 금융시장 안정 여부 등을 감안해 신축적으로 대응하겠다.”

―금융시장에선 아직도 현대건설의 유동성 문제 등을 걱정한다. 일각에선 여전히 워크아웃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최근 1, 2개 줄었다. 현대의 위기는 미스매칭에 따른 유동성위기로 본다. 현대를 떠나 기업이 자금난을 겪을 때 정부는 위기가 구조적인 문제인지, 일시적 유동성 문제인지를 판단해 후자라면 지원할 것이다. 현대 문제는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다.”

―기업부실을 제거하지 않는 한 금융부실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정부가 구상하는 기업 구조조정 방향은….

“44개 워크아웃 기업들은 대부분 경영진 문제가 심각하다. 채무조정으로 원가경쟁력이 커져 시장에서 덤핑하는 것도 문제고 은행이 파견한 경영관리인이 경영능력이 모자라는 것도 심각하다. 동아건설에 실패한 기업인이 돌아오겠다는 것은 대표적 모럴 해저드다. 대통령에게 금융부실 정리에 앞서 기업부실을 과감히 정리해야겠다고 보고했다. 워크아웃 협약에 법적 강제력을 주는 방안을 법무부와 협의중이다. 정부는 기업의 회생 가능성보다 수익성을 중시한다. 어차피 수익성이 없다면 오래 살지도 못한다. 30∼60대 기업은 밀착 모니터링을 통해 정상 기업, 유동성 문제기업, 구조적 문제기업으로 3분해 구조적 문제기업에 대해선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예정이다.”

―대우 특별감리단의 조사가 거의 끝날 때가 됐다. 김우중 전회장에 대한 처리는 어떻게 하나.

“결과를 봐야 한다. 사회 통념상 100조원 가까운 부실을 내 국가경제를 파탄시킨 사람을 놔두느냐는 여론이 있다. 위법 사실이 있다면 고발할 것이다.”

<정리〓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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