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천표/기업-금융개혁 동시 추진을

  • 입력 2000년 7월 10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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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공적자금 소요를 98년 초에 64조원으로 시산(試算)할 때 당시 인지된 정도 이상으로 기업이 부실해지고 그로써 금융기관이 새로운 부실자산을 안게 될 가능성을 얼마나 감안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구조조정 악순환 없애야▼

아마도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새한그룹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고 현대그룹이 유동성 문제를 겪게 되는 과정을 거쳐 당시 정상이라고 판별됐던 금융기관 채권이 새로 부실화한 그 후의 변화는 적절하게 감안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64조원이라는 공적자금이 시산된 뒤 대마(大馬)라고 여겨졌던 대우그룹이 해체됐고 대우그룹의 주요 기업은 워크아웃 대상으로 결정됐다. 새한은 워크아웃을 신청했으며 현대는 500억원의 유동성 부족이 미칠 수 있는 것 이상의 파장을 우리 금융시장에 미쳤다. 한마디로 금융기관 부실자산의 현재 실상은 64조원으로 계산될 때와 크게 달라졌다.

이제 2차 금융구조조정을 해야 할 시점에 임해 앞으로는 기업부실이 금융부실을 가져오는 관계를 명시적으로 감안해 기업구조조정과 금융구조조정을 동시에 하도록 해야 한다. 구조조정 조치를 한 뒤 새로운 사정이 대두해 다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악순환은 없도록 해야 한다.

6월 30일 금융기관 잠재부실 규모가 은행권 3조9000억원, 투신 증권권 1조9000억원으로 발표됐다. 이 집계의 내용도 더 깊이 검토해 봐야겠지만 우선 총액만을 볼 때 그 규모가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작아 반갑다. 단기 부동자금이 200조원이 넘는다는 우리 금융시장 규모를 상기할 때 6조원 정도의 잠재부실은 민간의 부실자산 상각 및 매매거래를 통해 쉽게 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6조원의 잠재부실을 시장이 수긍하고 그 동안의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만 된다면 앞으로는 안심하고 기업부실과 금융부실을 모두 털어 내고 금융구조조정을 완결할 수 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주요기업 자산의 부실 정도에 대응하도록 감자(減資)하고 해당기업 채권자를 중심으로 증자를 유도하며, 모든 금융기관 자산의 부실 정도에 상응하는 감자를 한 뒤 예금자를 중심으로 자본 참여를 유도한다면, 주요 기업과 모든 금융기관을 일제히 ‘클린’화하고 또 자본도 충실화할 수 있어 기업 재무구조와 금융기관 재무구조를 모두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구조조정은 차후 더 이상의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기에 좋다. 나아가 이로써 간접금융 비중은 줄어들고 직접금융 비중은 늘어나게 돼 이른바 IMF 위기를 초래한 핵심원인으로 적시된 ‘잘못된 금융구조’를 시정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최근 2차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당위성은 많이 표명됐으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별 논의가 없다. 정부가 제안한 은행합병 또는 금융지주회사안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노정간 극한대립의 표적이 돼 있다. 한편에서는 미국 씨티그룹의 선례를 들어가며 금융지주회사의 장점과 유용성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 국회의 동의 없이 공적자금을 마련하려는 편법은 아닌지, 또는 인력감축을 위한 술책은 아닌지를 의심한다.

▼중간목표에 집착 말라▼

구조조정의 궁극적 목표는 효율적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목표를 향한 중간목표로서 우리사회에 없는 투자은행제도를 도입해 정착시키거나, 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 간접금융기관의 효율화를 꾀하거나, 채권시가평가제를 제도화하여 직접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중 어떤 중간목표에 집착하든 그것이 근본목표의 달성과 합치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에나 합당한 것이다. 중간목표 그 자체로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지향점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구조조정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결정해서 집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여러 수단들의 상대적 효과성과 집행과정의 적시성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하겠다. ‘부작위에 의한 작위범’이란 말을 곱씹으며 정책수단 선택에 있어서 본말의 전도나 선후 판단에 혼동이 있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천표(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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