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노경/'의사선생님' '의사아저씨'

  • 입력 2000년 7월 3일 19시 04분


의사들의 전면 폐업 사태는 우리 사회가 지난 30여년간 경험한 다른 사회적 갈등이나 분쟁과는 아주 다른 점이 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위와 신분이 안정되고 우월적 위치에 있는 계층의 집단행동이라는 점과 고도의 전문성으로 무장한 기능적 지식인의 집단태업이었기에 다른 전문가로 이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흔히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로 표현되는 의사의 행동특성을 고려할 때 조직적이고 결속된 집단행동은 의사들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의사의 권익옹호를 위한 집단행동은 의료의 윤리성과 특수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통념조차 뒤엎었다. 게다가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이 환자 곁을 떠나는 반지성적 행동이었기에 사회에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의사들은 왜 화가 났으며 왜 환자 곁을 떠났는가?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 경제적 동기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빙산의 표면만 관찰한 것이다.

이번 사태의 가장 중요한 원인(遠因)은 프로페셔널리즘(전문주의)의 쇠퇴에 대한 반동(反動)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대중소비사회의 출현과 함께 의료는 인술을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고 시혜를 받을 권리를 사는 ‘소비자의 권리’로 여겨지고 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의사는 의료서비스라는 상품을 제공하고 환자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로 진료비를 지불하는 거래관계로 바뀜에 따라 의사는 전통적인 권위나 존경을 유지하면서 환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의사선생님’이 ‘의사아저씨’로 바뀌는 환경에서 권위와 존경, 명예와 보람으로 유지되던 프로페셔널리즘의 쇠퇴가 시작됐고, 의사의 위기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은 개혁추진 속도나 방법의 급진성과 저돌성에 대한 저항을 꼽을 수 있다. 정부는 대화나 토론을 바탕으로 이해관계와 견해의 차이를 조정하고 절충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의약분업을 시행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상명하달식으로 ‘의료개혁 칙서’를 선포하고 밀어붙이기식으로 급진적인 개혁방식을 취함으로써 의사들의 보수주의 성향과 충돌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의사폐업사태를 통해 사회정의나 윤리의 개념이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부문도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자본이 투자되고 이윤이 창출되는 영역으로 변했다. 의사의 직업윤리도 변질돼 생업을 위해 진료에 임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직업윤리가 경제적 이익추구를 초월해 성립하려면 그 직업이 일정한 경제적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때만 이뤄진다는 사실을 이번 의료대란은 실감나게 보여주었다.이것은

의사가 자기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직업적 본분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성립되지 않을 때에는 직업윤리를 준수하기 어려워질 만큼 사회적 의식과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김노경(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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