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런일이…]77년 부가세 도입때 '특례 구멍'

  • 입력 2000년 7월 2일 21시 22분


정통 재무관료로 재무차관을 역임한 강만수(姜萬洙)씨는 해마다 7월이 되면 부가가치세 악몽에 시달린다. 1977년 7월 당시 박정희 정부는 세수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와 인권 문제로 충돌하면서 무기산업 육성에 나섰으나 재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그 부족분을 세금으로 메우려 했다. 이 때 고안한 것이 부가가치세였다. 이 세제는 거래 단계마다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제대로 운영만 하면 탈세를 막고 세수도 늘리는 이상적인 제도이다.

전제 조건은 영수증 처리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 거래 내용이 불투명하면 부정의 온상으로 타락하고 만다. 재계는 부가세도입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장부를 쓸 능력조차 없는사업자가 대부분인데 무슨 수로 과세하느냐는 것이 공식적인 반대 이유였다. 소득액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세수증대에만 혈안이 됐던 청와대는 타협안을 내놓게 된다. 그것이 바로 과세특례. 기장이 어렵다는 이유로 실제 거래액 대신 기업규모별로 별도로 세율을 정해 과세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 과세특례대상으로 분류되어 투명과세라는 부가세도입의 취지는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주무과장이었던 강씨는 사표로 저항했다. 부가세 도입을 연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과세특례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과세특례를 남발하면 거래액수와 무관하게과세가 이루어져 조세형평이 깨어짐은 물론 소비자가 이미 납부한 세금을 사업자가 가로채는 현상도 생기게 된다는 것. 재무관료의 반발은 정치논리에 묻히고 만다. 그 때 생겨난 과세특례는 강과장의 예견대로 우리 경제에 많은 부조리를 낳았다.

정부는 과세특례 제도를 올해부터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강 전차관은 만 23년 만에 부가세가 제 길로 들어섰다며 방향을 바로잡은 후배들을 대견해 했다. 실현여부는 물론 더 두고 봐야하지만….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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