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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26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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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한국영화 사상 최대로 꼽히는 40억원의 제작비, 흥행에 대성공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태원엔터테인먼트와 ‘쉬리’의 시네마서비스가 공동전선을 구축한 올여름 한국영화의 유일한 블록버스터, 김혜린 원작 만화의 탄탄한 구성에 예술적 경지에 도달한 홍콩무술 특수효과팀의 만남.
이미 전국 100만관객을 돌파한 ‘글레디에이터’와 개봉 이틀만에 19만8000여명의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운 ‘미션임파서블 2’에 맞서는 이 영화에 거는 기대는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비천무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액션장면들이 넘쳐났다. 1.75㎜ 굵기의 크레인줄을 통해 밤하늘을 가르며 지붕위를 날아다니는 자객들의 군무에 가까운 와이어액션이나 땅속에 묻은 파이프에서 가스를 일시에 내뿜는 방법으로 연출한 검기(劍氣)가 땅을 가르는 장면 등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끝날 때쯤 시사회장의 열기는 많이 식어갔고 엔딩타이틀이 올라갈 때 터져나온 박수도 힘이 빠져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서사적 재미를 압축한 ‘동사서독’에 미치지 못한 채 SF액션에 그친 ‘풍운’에 머물고 만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애절한 멜로드라마와 비장미 넘치는 무협이라는 양날의 칼을 만들려다 액션위주의 ‘보여주기’에만 치중하면서 ‘칼틀’ 자체가 휘어져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놓친 연출이 영화의 밀도를 흩뜨려놓았다. 한국영화로는 기록적인 2000컷이 넘는 장면을 통해 원작을 절제된 영상으로 나타내려한 김영준감독의 의도는 좋았지만 장면과 장면사이 여백속에 흘러들어 가야할 극적 재미마저 말라붙었다.
이는 극을 끌고갈 주인공 진하(신현준)와 설리(김희선)의 사랑이 싹트는 부분부터 두드러진다. 낱낱의 에피소드만 있을 뿐 그 속을 관류해야할 애틋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계절이 바뀌는 꽃밭을 배경으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빙빙 돌면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장면에서 정서적 감흥보다는 생경한 컴퓨터그래픽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신현준의 눈빛연기는 ‘크로우’를 연상시키지만 발성의 무게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고 김희선의 연기는 관객을 극속으로 몰입시키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테크노세대에게 서사가 무슨 상관이랴. ‘공포의 외인구단’에서처럼 이 영화 역시 원작만화의 후광과 배역의 이미지만으로도 강호를 제패할지 모를 일이다. 12세 입장가. 7월1일 개봉.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