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세밀화에 담아낸 산골의 가을

  • 입력 2000년 6월 2일 19시 34분


▼'바빠요 바빠'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보리 펴냄▼

'마루는 산골에 살아요. 마루네 마을에는 가을이 일찍 오지요. 가을이 오면 모두가 바빠요 바빠.'

여름에 왠 가을 이야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사계절을 세밀화로 묘사해온 보리의 '도토리 계절 그림책 시리즈'가 이제야 완결된 것이다. 여름의 풍경을 담은 '심심해서 그랬어'(97년)를 시리즈 첫 책으로 펴낸 후 3년만의 일이다.

한국의 가을 풍광을 드러내는 마을로 취재대상이 된 곳은 강원도 삼척의 산골마을. 아이와 함께 책장을 넘길 때 표지부터 범상히 넘어가지 말고 보통의 농촌 풍경과 달라 보이는 모습을 찾아야 한다. 우선 짚이나 기와를 얹지 않은 판잣집이 눈에 띈다.

그렇다. 가을편에 나온 마루의 집은 400년이나 되는 강원도 산골마을 특유의 굴피집. 굴피집은 참나무 껍데기를 펴서 기왓장처럼 잇대어 지붕을 얹은 집이다.

방문턱에 앉아있는 할머니 손에 들린 것은 발이 푹푹 빠지는 눈위를 걸어다닐 때 신는 설피다.

수확과 겨울나기를 위해 1년 중 가장 바쁜 때인 가을. 부엌의 부지깽이도 나서서 도와야 할 때이니 마루는 바쁘면서도 신난다. 비탈밭에 메밀꽃이 하얗게 피어나면 할머니는 마당 가득 고추를 널어놓고 말리느라 바쁘고 마루는 고추 쪼아먹으러 오는 닭들을 장대로 쫓느라 바쁘다.

길가에 미루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면 콩을 털어야할 시간. 할아버지 할머니는 도리깨로 콩 터느라 바쁘고 생쥐들은 콩알을 훔쳐가느라 덩달아 바쁘다.

감나무에 감이 빨갛게 익으면 곶감을 만드느라 온식구가 분주해진다. 서리가 하얗게 내리면 무와 배추가 얼기 전에 밭에서 뽑아야 할 시간. 아버지는 겨우내 묻어놓고 먹을 무 구덩이를 파느라고 바쁘고 하늘의 기러기는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느라고 바쁘다. 바쁜 하루 일과가 끝나면 방안의 벽난로 코쿨에서는 은근히 불이 타오르는데 마루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자느라고 바쁘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는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나무도 풀도 바쁘다. 화가 이태수는 쉽게 보기 힘든 풍경들을 연필과 목판의 중간단계 도구인 콘테를 통해 "까실까실한" 질감으로 표현해냈다. 7500원.

한편 계절 그림책 완간을 기념해 화가 이태수의 세밀화 원화전시회가 27일∼7월2일 서울 현대백화점 신촌점 10층에서 열린다. 문의 02-323-2653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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