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새영화]'사이더 하우스' 고아원청년의 삶

  • 입력 2000년 6월 1일 19시 57분


오점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실수투성이인 삶과 추악한 세상을 홍상수 감독같은 이는 소름 끼치도록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또 어떤 감독들은 똑같은 인생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감싸 안는다. 올해 아카데미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탄 '사이더 하우스(원제 The Cider House Rules)'는 후자에 속하는 영화다.

'개같은 내 인생' '길버트 그레이프'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 감독 라세 할스트롬은 현란한 기교없이 정통 드라마의 고전적 화법을 좇은 이 영화에서 1940년대를 배경삼아 고단한 삶을 따뜻하게 그렸다.

고아원을 운영하는 의사 라치 박사(마이클 케인)는 자신의 보호아래 자란 청년 호머(토비 맥과이어)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후계자로 낙점하지만 호머는 바깥 세상에 나가고 싶어한다. 호머는 라치 박사에게 낙태수술을 받으러 온 캔디(샤를리즈 테론)와 윌리(폴 러드) 커플을 따라 고아원을 떠나고 윌리의 사과주스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번역하면 '사과주스 농장의 수칙'쯤이 될 원제는 영화에서 '술마시고 기계를 만지지 말 것'등 농장 일꾼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가리킨다. 이 수칙처럼 세상에는 누구나 뻔히 아는, '하지 말아야할' 일들이 있다. 그러나 호머는 전쟁터에 나간 윌리의 애인 캔디와 사랑에 빠지고, 엄격해 보이던 일꾼 로즈(들로이 린도)는 딸을 임신시키며, 라치 박사는 호머를 위해 의사 자격증을 위조한다. '규칙'에 비추어보자면 이들은 모두 단죄받아 마땅한 일들을 저질렀지만 영화는 이들의 추악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은 마음과 육체가 시키는 대로 달려가다 발을 헛디딘 인물들의 어리석은 인생을 묘사하면서도, 끝내 죽음을 맞은 로즈의 말처럼 "완벽한 규칙이란 없으며,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선과 악, 죄와 벌로 이분화되지 않는 탄탄하고 심층적인 이야기 구조는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 뿐 아니라 자신의 소설을 직접 각색한 베스트셀러 작가 존 어빙의 역량에 크게 힘입었다. 또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탄 마이클 케인을 비롯해 정직해보이는 표정으로 호머의 그늘진 내면과 냉정한 면모까지를 표현해 낸 토비 맥과이어 등 출연진들의 호연은 개개인의 캐릭터에 주목한 이 영화의 섬세한 결을 잘 살려냈다. 1940년대 뉴잉글랜드의 풍광을 부드러운 색채로 재현한 촬영도 좋다. 15세이상 관람가. 3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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