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플레이 투 더 본'…우디해럴슨의 복싱도 볼만하다

  • 입력 2000년 6월 1일 12시 16분


더 이상 '헝그리 복서'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적어도 영화 <플레이 투 더 본>에 따르면 그렇다.

론 쉘턴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는, 권투는 이제 스포츠라기보다 철저한 쇼비즈니스 세계의 이벤트일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난잡한 투전판이 되면 될 수록 복싱의 사각 링은 우리들의 사는 꼴과 더욱 더 닮아간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누르고 생존하는 것,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제1의 삶의 원칙이다. 그래서 제목도 'Play it to the bone', 곧 '죽을 때까지 싸워라'이다.

한때는 반짝 유망주였지만 지금은 퇴물이 돼버린 프로 복서 시저(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빈스(우디 해럴슨)는 같은 체육관에서 빈둥대는 사이.

어느 날 이 둘은 유명 프로모터로부터 긴급전화를 받는다. 마이크 타이슨의 복귀전에 앞서 열리는 세미 파이널 게임에 둘이 경기를 하라는 내용이다. 조건은, 이기는 사람에게 무조건 타이틀 도전전을 마련해 준다는 것.

친구 사이였던 둘은 라이벌 경기를 펼치기 위해 라스베가스로 향한다. 한때 빈스와 사귀다가 지금은 시저와 애인관계인 여인 그레이스(로리타 다비도비치)와 함께.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링위에 마주 선 두 사람은 재기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놓고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링위에서는 더 이상 친구도 필요 없다. 오직 적일 뿐이다.

유명스타 둘이 권투 글럽을 끼고 서로를 노려보며 마주서 있는 광고 포스터는 이 영화가 매우 박진감 넘치는 복싱 경기를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제목까지 다소 살벌한 내용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이 영화는 장장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의 반 이상을 LA에서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자동차 여행으로 '때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로드 무비인가? 복싱의 다이너믹한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로서는 '완전히 속았다'는 불만도 터져 나올 수 있다. 자동차 안에서 두 인물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분명 유머와 위트로 채워져 있긴 하다.

스패니시 발음과 억양으로 재잘대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끊임없이 욕설을 지껄여 대는 우디 해럴슨의 연기는 이 둘이 이제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선 연기자들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1시간 반 분량이면 아무래도 조금 도가 지나치다. 그 대목까지는 한마디로 본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끝이 좋으면 '모든 잘못이 용서가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객석에서 몸을 비틀다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할 바로 그 순간, 영화는 피튀기는 권투경기를 선사한다.

보통의 권투영화가 1,2회를 보여주다가 마지막 라운드로 건너뛰는 것에 비해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지겨움을 보상해 주겠다는 듯이 1회부터 차근차근 10회까지의 경기를 보여 준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중간 라운드는 빼먹는다.

하지만 마치 스포츠 뉴스의 하일라이트를 보듯 비교적 매우 상세하게 경기 내용을 전한다.

결론적으로 권투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마치 실전을 보듯 관객들로 하여금 경기에 몰입하게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줄곧 스포츠 영화를 만들었던 론 쉘턴 감독의 노하우에서 비롯된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야구영화 <불 던햄(19번째의 남자)>를 비롯해 <화이트 맨 캐낫 점프>, <틴 컵> 등 각종 운동경기 영화로 채워져 있다.

링위에서 피를 튀기며 치고 받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동물적인 흥분을 느꼈다면 그 사람은 분명 골수 스포츠팬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올바로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둘의 모습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관객들이야말로 영화와 인생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다.

몇푼 안되는 돈을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는 모습은 꼭 복싱 링위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야말로 <플레이 투 더 본>같은 영화를 본 후에 얻게 되는 조그만 보람같은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오동진(ohdjin@film2.co.kr)

기사 제공: FILM2.0 www.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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