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미국에서 방송사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일단정지 신호를 지키지 않아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자동차를 몰고 사방이 탁 트인 도로를 따라 가던 중 일단정지선이 나타났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브레이크를 잠깐 밟아 속도를 줄인 뒤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교통경찰관이 쫓아와 차를 세웠다. 나는 “사람이 없었고 속도도 줄였지 않느냐”고 하소연했지만 교통경찰관은 “일단정지선에서는 무조건 서야 한다”며 딱지를 뗐다. 벌금이 무려 100달러가 넘었다.
당시엔 벌금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단속을 하는 그 기본정신은 옳다고 본다. 교차로를 논스톱으로 지나는 차량들은 행운을 바랄지 모르지만 늘 행운이 따르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른 방향에서 교차로에 진입하는 차량도 같은 생각을 한다면 사고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면도로의 교차로나 골목길에서 큰 길로 연결되는 곳에 ‘일단정지선’ 조차 그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무리 작은 골목길이라도 일단정지선은 그어져 있어야 한다. 횡단보도나 교차로에서 ‘일단정지’를 지키는 것은 차량 위주가 아닌, 사람 위주의 운전문화를 가꾸어나가는 첫 걸음일 것이다.
정동영(국회의원)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