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통신/도쿄에서]'마루야마 마사오 강의록'

  • 입력 2000년 5월 26일 20시 08분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사상사이자, 참된 의미의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자 심혈을 기울였던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96년 82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사상은 빛이 바래기는 커녕 요즘 들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사로 잡고 있다.

마루야마가 끊임없이 역설했던 것은, 일본적 사상은 삼라만상 모든 현상을 인간의 의지를 개입시키지 않고 진행되는 사물(事物)의 ‘자연’ 과정으로 파악하지만, 근대사회란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바탕을 둔 ‘작위(作爲)’에 의해서만 형성된다는 것이다. 마루야마는 이처럼 일본의 전통적 사유에 비판을 가하는 한편, 패전 후의 일본 정치에도 가차없는 비판을 해 왔다.

1936년부터 1996년에 걸친 마루야마의 저작은, 사후에 완결을 본 ‘마루야마 마사오집’(전 19권, 이와나미 서점)에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소개하는 두권의 책 ‘마루야마 마사오 강의록’과 ‘마루야마 마사오 좌담’에는 지금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마루야마의 인간적인 면모가 담겨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강의록’은 마루야마가 동경대 법학부에서 행했던 일본정치사상사 강의를, 자필 초고 및 강의 프린트, 그리고 학생들의 노트 등을 기초로 해서 재현한 것이다. 풍부한 자료를 근거로 치밀한 논리를 펼치고 있는 ‘강의’는, 마루야마가 몸 전체로 학생들을 향해 호소하듯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좌담’은 1946년부터 1995년까지 마루야마가 참가했던 좌담을 모은 것으로, 좌담 상대는 학자와 작가만이 아니라 저널리스트 영화감독 배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화제는 일본의 정치 상황이나 학문 상황에 관한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나, 그 이외에도 긴장을 푼 일상적인 마루야마의 모습이 드러나는 귀중한 대담도 들어 있다. 이 ‘좌담’을 통해 우리는 마루야마가 굉장한 클래식 음악애호가이자, 문학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문자 그대로의 교양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루야마는 ‘시민적 공공성’론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되지만 한편으로 그의 ‘근대주의’와 ‘국민주의’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입장에 서있든지 간에 마루야마의 저작이 끊임없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사상이 일본 사회에서 아직 의미를 잃지 않고 있음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이연숙 <히토츠바시대 사회언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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