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채권시가평가제']장기금리 상승 예상땐 가입조심

  • 입력 2000년 5월 21일 19시 44분


<<시장상황에 따라 가치가 오르내리는 주식처럼 채권 시세도 금리변화 등에 따라 오르내린다. 이들 채권에 투자하는 투신 은행권의 신탁상품도 당연히 시세평가 대상. 시장충격 등을 우려, 시행이 미뤄져온 채권시가평가제가 40일 후인 7월1일부터 드디어 시행된다.

자본시장 선진화의 중대 고비가 될 이 제도의 적용대상, 투자가들의 자금운용 가이드 등을 정리해본다.>>

7월 1일부터 채권시가평가제도가 시행되면 공사채 펀드에 돈을 넣어둔 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 제도가 시행에 들어갈 경우 금리에 따라 공사채 펀드에 들어있는 채권값도 즉각 주식처럼 가격이 변동돼 그동안 ‘연 몇%’식의 확정금리를 준다는 투신사 보장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된다.

▽어떤 펀드가 대상인가〓기존에 가입한 장부가 펀드는 7월1일이 지나도 시가평가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다만 이들 펀드에 신규로 자금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만기가 되면 자동적으로 장부가 펀드는 소멸된다. 또 개인연금이나 근로자장기저축 가계장기저축 근로자우대저축 세금우대형상품 같은 적립식공사채 펀드는 시가평가 적용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유보될 가능성이 높은 편. 초단기공사채 펀드인 MMF(머니마켓펀드)는 투자기간이 짧은 상품이기 때문에 7월 이후에도 장부가 평가를 한다. 투신업계는 86조원의 공사채 펀드중 이미 시가평가 적용을 받고 있는 10조원 규모의 중장기공사채 펀드와 MMF 30조원을 제외한 46조원이 장부가 펀드로 시가평가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

▽원금손실 가능성 있나〓시가평가제가 되면 채권형 펀드도 주식과 마찬가지로 부도채권이 많이 들어있거나 금리가 갑자기 큰 폭으로 오를 경우(채권값이 하락) 원금마저 손실을 볼 수 있다. 반대로 금리가 내린다면 투자이익이 당초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채권이자가 계속 발생하고 그 이자로 다시 채권에 재투자되기 때문에 실제로 손해를 보려면 현재 회사채금리 수준에서 6%포인트는 더 올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원금손실 발생은 그야말로 가능성 수준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다양한 채권형 펀드 출시될 듯〓 펀드에 어떤 채권을 넣는지에 따라 국공채전용 펀드와 일반 채권형 펀드 전환사채 펀드 등이 판매되고 있다. 특히 주식형 펀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목표수익을 내면 만기개념 없이 바로 결산 가능한 스폿펀드도 탄생할 전망.

투자자들도 금융기관의 이미지 대신 다양한 공사채 펀드의 특징을 살피고 해당회사 채권운용팀의 과거 실적 및 채권 펀드매니저의 역량을 중시해야 한다.

▽언제 가입 하는게 유리할까〓현재 금리수준과 앞으로의 전망치가 중요하다. 단기적인 세세한 금리변동보다는 장기추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바람직. 금리가 오른다고 해도 단기에 소폭 상승한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장기적으로 많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채권형 펀드 가입은 불리하다. 만약 확정금리를 굳이 고집하는 투자자라면 펀드의 만기와 편입된 채권의 만기구조를 일치시켜 수익률을 고정하는 확정상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단 확정금리가 은행예금보다 얼마나 높게 제시할 수 있을지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이강운기자>kwoon90@donga.com

▼채권시가평가제란▼

채권시가평가제는 펀드에 편입된 채권을 그날 그날의 시장가격으로 평가해 펀드 기준가격에 곧바로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주가변동에 따라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매일 변하는 것처럼 채권시가평가를 하는 공사채형 펀드도 금리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수시로 달라진다.

예컨대 펀드 설정 후 채권금리가 오르면(채권가격 하락) 공사채형 펀드의 기준가격은 떨어지고 채권금리가 내리면(채권가격 상승) 기준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금리는 일종의 ‘할인율’이기 때문에 상승하면 채권값은 떨어지고 낮아지면 채권값은 올라가게 된다. 백화점에서 실시하는 세일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종전의 공사채형 펀드는 대부분 채권 취득가액에다 발행이율에 따른 경과이자를 더해 평가하는 장부가 방식을 적용해왔다. 만기땐 채권수익률(채권가격) 등락에 상관없이 가입당시의 금리로 이자를 받았다. 실적배당상품인데도 은행의 정기예금처럼 확정금리를 주는 저축상품으로 둔갑한 것.

채권시가평가 펀드의 수익률 변화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3년만기 채권으로만 구성된 공사채형 펀드로 가입 당시 채권유통수익률이 연 11%라고 가정하자. 장부가 평가방식의 공사채형 펀드라면 채권금리의 등락과 상관없이 연 11%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시가평가 펀드는 금리등락에 따라 만기시 펀드수익률이 달라진다. 가입 1년 후 채권금리가 연 10%로 떨어지면 펀드수익률은 연 12.04%까지 상승한다. 금리가 떨어지면 펀드에 편입된 채권값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금리가 연 12%로 상승하면 채권값의 하락으로 펀드수익률은 연 8.03%로 떨어진다.

채권전문가들은 “금리상황에 따라 채권편입비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거나 금리선물을 활용하면 시가평가에 따른 리스크를 상당부분 커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강운기자>kwoon90@donga.com

▼정부입장과 금융권반응▼

정부의 채권시가평가제 시행원칙은 확고하다. 저축상품처럼 취급돼온 투신권 신탁상품에 대한 투자가들의 ‘손실분담’ 원칙을 분명히 하고 선진국형 자본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거쳐야할 ‘통과의례’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특히 신세기투신 한남투신에 이어 한투 대투 등 양대 투신 부실처리에 있어서 투자가들이 일부 져야할 손실을 공적자금으로 메웠다는 비난이 거세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처지다.

그렇지만 정부의 정책시행 일정을 되살펴보면 정부대응은 매우 조심스럽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당초 98년 11월 이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으나 투신권 자금이탈과 이에 따른 금리상승이 우려돼 시행시기를 최종적으로 올 7월로 늦췄다. 금감원은 또 최근 시가평가 적용대상에서 기존 장부가 펀드를 제외하되 이들이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것을 7월부터 금지, 자연스럽게 ‘고사’시키기로 했다.

이와 함께 초단기 수시입출식 머니마켓펀드(MMF) 등도 시가평가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만큼 시가평가제는 7월부터 전면적으로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부분적으로’ 실시되는 셈이 됐다.

마지막 남은 쟁점은 개인연금 근로자장기 가계장기 근로자우대 세금우대 등 장기적립식 상품. ‘노후생활보장형 상품들이기 때문에 시가평가제 도입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온 상품들이다. 금감원은 이들에 대해서도 이달 말쯤 처리방침을 발표할 계획.

투신권은 시가평가제의 실시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취지엔 공감하지만 시장불안이 확산될 경우 자금이탈이 가속화돼 투신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기 때문. 실제로 상대적으로 자본확충에 진전이 있었던 현대투신이 지난달 시장신뢰를 얻지 못해 계열사 주식들이 투매사태를 겪었던 것은 우려할 만한 반증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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