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사장 자진사퇴, 글쎄요…"

  • 입력 2000년 5월 17일 20시 03분


"막 출발하려는 배에서 선장을 하선시키면 배는 어디로 가고 선원은 어떡합니까."

또다시 국민 세금을 공적자금으로 수혈받는 한국투자신탁 직원들은 16일 난데없는 이종남(李鍾南)사장의 사퇴 소식을 접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적자금 2조원을 받은 전임 변형(邊炯)사장이 1월21일 사퇴한 뒤 사장 자리를 이어받은지 4개월이 채 안돼 또 사장을 갈아치우게 됐기 때문.

추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데 따른 책임론이 그의 사퇴배경이다.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난 이사장은 "공적자금 투입에 맞춰 분위기를 바꿔준다는 생각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외압은 전혀 없었으며 순전히 본인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임원들에게는 "조용히 물러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고 구조조정 일정을 착실히 추진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이사장은 사장 취임 후 5년 내에 경영정상화를 이루자면서 직원들을 독려한 결과 '뉴스타트 21'이라는 큰 밑그림을 만들어냈다. 이제 이 생각들을 막 구현하려는 시점에서 물러난 것이다.

취임 4개월도 안된 이사장이 한투 부실에 책임이 있다고 믿는 직원은 없다. 이 때문에 그가 100% 자신의 뜻에 따라 물러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1500여명의 한국투신 직원들은 금융감독위원장과 재정경제부장관 청와대 등에 사장 중도 퇴진이 부당하다는 건의서를 만들고 있다. 회사경영 정상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이사장을 중도 퇴진시키면 고객불안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정부는 8조원을 투신권에 쏟아붓는 명분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민형사 고발 방침도 분노하는 국민감정을 달래려는 고육책 중 하나이다.

이사장이 명분 찾기의 '희생양'으로 선택됐다면 한투 구조조정 작업이 더욱 더뎌질까봐 안타까울 따름이다.

최영해<경제부>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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