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여성미는 진화의 산물?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1980년 5월의 한국은 정신분열 상태였다. 정국이 불안한 가운데 15일 서울에서 열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생중계되는가 하면 18일부터 광주에서는 무고한 시민들이 신군부의 총칼 앞에서 풀잎처럼 쓰러져가지 않았던가.

계엄령, 각선미, 관음욕망, 민주화항쟁, 집단학살, 지역감정, 타지역의 방관 그리고 결사항전 등 참혹하고 부끄러운 어휘가 뒤범벅된 그 해 5월은 그야말로 수치와 광란의 세월이었다.

그럼에도 7월에는 서울에서 미스유니버스 대회가 버젓이 열린다. 미인선발대회가 스트립 쇼, 야구장의 치어걸, 도색잡지 따위의 포르노그라피처럼 남자들의 엿보기 욕망을 해소시켜주는 사회적 장치라는 주장이 그럴 법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국제 행사였다.

따라서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화장품과 의류 산업계가 경제적 이득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이며, 여성을 현재의 사회적 위치에 고착시키기 위해 남성 중심의 사회제도가 구축한 신화일 따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사회적 구성물로 간주하는 급진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은 1991년 미국의 나오미 울프가 펴낸 '미의 신화'에 집약되어 있다.

그녀는 "아름다움은 경제처럼 정치에 의해 결정되며, 현대 서구사회에서 남성 지배를 공고하게 만드는 최선의 마지막 신념 체계이다"라고 설파한다.

울프처럼 기존 미인대회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다고 판단해 국내 페미니스트들이 개최하는 행사가 다름 아닌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다.

첫 번째 출전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아무개 할머니, 최고령자는 89세의 박할머니, 최연소 출전자는 열살짜리 여자 어린이. 속이 훤히 비치는 속곳 차림의 한의사에서부터 생고기를 가슴에 붙인 비키니 복장의 행위 예술가까지 출전자들은 신나게 무대 위를 누빈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일주일 앞둔 1999년 5월15일 서울에서 있은 제1회 페스티벌 참가자들의 면면이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43세의 장애여성, 만삭의 30세 주부, 여경출신의 81세된 노파. 이들은 키 155㎝이하이거나 77사이즈 이상의 옷을 입는 여성들과 함께 20일 열리는 제2회 대회에서 내면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겨루게 된다.

주최측이나 참가자들은 아마도 '아름다움은 제눈에 안경'이라는 옛말이 진리라고 소리치고 싶을 터이다. 그러나 최근에 과학자들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생존경쟁에서 여성 자신을 위해 진화되었으며 결코 남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구성물이 아니라는 이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생존경쟁에서 가장 유리하므로 여성미가 진화되었다는 뜻이다. 페미니스트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여자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든 문화권에 보편적이며 타고난 본능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대표적인 증거는 여성 몸매에 대한 선호도이다.

몸무게에 대해서는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지만 엉덩이에 대한 허리치수의 비율은 항상 변하지 않는다. 가령 1980년대 미스 아메리카는 1940년대 미인보다 두 배 가량 가냘플 정도로 말라깽이이다.

이러한 추세로 체중이 줄면 이상적인 몸매는 막대기 모양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나 미인들의 몸무게는 줄어들어도 엉덩이에 대한 허리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0.7을 유지한다. 남자들이 큰 엉덩이에 잘록한 허리의 여자를 본능적으로 선호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이러한 몸매의 소유자가 생식능력이 가장 우수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세 살된 아기들도 성인들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얼굴을 더 오래 쳐다본다고 한다. 사람은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능력을 타고난다는 의미이다.

여성미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평가 기준이 인류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졌다면 어느 누구도 여자의 아름다움을 왜곡할 권리가 없다.

미스코리아를 뽑건, 안티미스코리아를 뽑건. 미스코리아대회는 외면의 아름다움을 견주는 대회이고 안티미스코리아대회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회일 것이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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