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영훈/현지문화 껴안아야 투자도 성공

  • 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8분


4일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을 습격했다는 사건 뉴스를 듣고 매우 당혹했다. 인도네시아 ‘반식민제국주의(FAN)’ 단체 소속 젊은이 30여명이 한국대사관으로 몰려와 교포 기업인이 현지 근로자를 학대했다며 난동을 부렸고, 몇 사람이 대사관 현판을 뜯어내 발로 짓밟았다고 한다. 대사관이 핍박을 받는 주재국 인권운동가들이나 망명자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주재국 국민의 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자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을 습격한 사건은 해당 국가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언론에는 직업 연수생이라는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가 학대와 노동 착취를 당한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이 본국에 귀국해 반한(反韓)운동을 하거나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한국 기업인이 현지 근로자를 기만하고 학대한다는 보도가 가끔 나온다. 한국에 온 직업 연수생들은 우리 근로자들이 꺼리는 이른바 3D 분야에서 일하면서 연수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우리 기업인들 중에는 현지 문화나 관습을 무시하고 자기 식대로 근로자를 다루어 하루아침에 추방을 당하거나 현지인들에게 몰매를 맞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1966년 8월 외교관계 수립 이후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인구 2억2000만 명의 자원부국 인도네시아는 비동맹중립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우리 입장을 적극 지지하는 우방이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5대 수출국이자 6대 수입국으로서 양국간 교역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400여개의 한국 기업이 투자하고 있고 우리 교민도 2만명이 넘는다.

현지 한국대사관에서는 인도네시아 관련당국에 항의서한을 발송하고 관련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고 하나 이러한 조치가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외에 투자하거나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국내 기업인들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고방식의 차이를 비롯한 해외투자 대상국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투자의 내용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우리의 규범이나 관습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언행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투자자나 근로자들이 동남아 개발도상국에서 일하면서 잘못된 선입관으로 이유 없이 현지인을 학대하거나 멸시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우리의 경제적 지표가 다소 높다고 해서 그들을 홀대한다면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국가들이 우리를 홀대할 때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동남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일본 혹은 미국 대사관이 그 나라 기업인이 현지 근로자를 상대로 금품을 사취하고 육체적으로 학대했다는 이유로 습격을 당한 일이 없다. 일본이나 미국은 투자 대상국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산학협동을 통하여 이 연구 결과물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 기업에서도 현지 언어와 사정에 밝은 사람을 배치하고 현지 파견 직원에 대한 언어 및 문화이해 교육을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로 인해 잠시 유보됐던 지역전문가 양성 계획을 재개한 일부 기업의 조치는 매우 적절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국내에서 외국학을 연구하는 기관이나 대학과 기업간에 공조체제를 이루어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공유하는 체제가 형성되어야 한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무한 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독불장군 식으로 목전의 이익만 생각하면 멀리 뻗어갈 수 없다. 현지인의 안목으로 현지인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고영훈<한국외국어대교수·말레이-인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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