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혜경/투명성 높은 '인터넷 기부'

  • 입력 2000년 5월 7일 20시 52분


21세기를 시민의 시대라 부른다. 21세기는 시장중심의 19세기와 국가중심의 20세기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시민의 참여와 나눔의 문화로 특징지워지는 시민사회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특징을 규정하는 참여와 나눔의 방법, 전통, 그리고 기부의 인프라는 나라마다 다르다.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는 기업가들이 시민사회에 기여하는 비중이 높다. 비영리부문 재원의 30%가 정부지원이고 20%가 개인이나 재단의 기부금이다. 반면 조합주의 전통이 강한 독일에서는 비영리부문의 구성에서 종교조직의 비중이 높고 재원의 68%가 정부지원인 반면, 개인과 재단의 기부는 4%에 불과하다. 일본 같은 유교적 발전국가에서는 시민사회의 지형 자체가 국가에 의해 형성되는 측면이 강해서 비영리부문의 규모 자체가 작을 뿐 아니라 개인이나 재단의 기여 비율도 낮다.

우리나라의 시민사회의 현실은 일본형에 가깝지만, 비교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체계적인 자료 자체가 아직 없다. 그러나 미래가 있다. 우리의 나눔의 문화의 특징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역동적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우리는 아직도 가족 테두리를 넘어선 나눔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어떤 노인이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하면 자식이 없는지를 묻는다. 기업이 기부한다고 하면 주주한테 갈 배당금으로 생색내는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재산가들이 공익재단을 세우면 재산증여의 탈세수단이거나 지주회사 쯤으로 의심한다. 불우 이웃돕기 성금을 낸 사람들은 자기들이 낸 성금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못 미더워 한다. 기부의 제도적 인프라를 믿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후 시민사회부문이 급속히 성장했다.▽ 환경 여성 인권 소비자문제 등 각분야에서 시민참여가 활발해졌고, 기업의 재단설립이 증가하고, 대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이 늘었으며, IMF위기 이후 시민단체들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기부문화 왜곡의 상징이던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이 폐지될 것이며, 사회복지 공동모금이 민간부문으로 이양됐다.

이같은 나눔의 문화의 과거와 현재가 미래를 만나고 있다. 지난 3월 성공한 벤처기업가 25명이 1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아이들과 미래’가 그것이다. 정보통신 혁명은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모금과 기부의 양식도 바꿔놓고 있다. 인터넷 비지니스의 성장속도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인터넷을 통한 모금과 기부는 네티즌에게 편리할 뿐 아니라 비영리조직의 투명성과 책임성도 높여준다. ‘아이들과 미래’의 비전은 벤처자본모델을 적용해 혁신적인 비영리조직들의 새로운 디지털시대에의 적응역량을 높이고, 그리하여 21세기가 요구하는 나눔의 문화를 선도하는 것이다. 이들의 성공은 한국 벤처의 미래에 신뢰를 더해줄 것이며 정보통신 산업의 기반을 확고히 해줄 것이다.

그러나 문화변동은 기술의 변동보다 속도가 느린 법. 미래형 디지털 복지의 비전은 현재형 아날로그식 기부와 자원봉사는 물론, 김밥할머니들의 과거형 나눔의 문화를 아우르면서 정착해가야 할 것이다.

이혜경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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