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늘어나는 아동학대

  • 입력 2000년 5월 4일 19시 06분


어린이날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만들어진 날.

그러나 아동학대가 만연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 어린이날을 무색케 한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부끄러운 행태를 들여다본다.

▼어른이 무서워요▼

인천에 사는 A씨는 3월 어느 날 동네 목욕탕 앞에서 구걸하는 유원이(가명·12·여)를 알게 됐다. 사연인즉 92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자 알코올중독에 빠진 아버지가 생활의욕을 잃고 2년 전부터 유원이를 앵벌이로 내몰았다는 것.

생활보호대상자인 아버지는 유원이가 빈 손으로 돌아오면 허벅지와 종아리를 마구 때렸다. 유원이는 아버지의 방임으로 교육을 받지 못해 글도 읽을 줄 모른다.

1월 경기 성남시 여성의 쉼터에 어머니와 함께 수미(가명·12·여)가 찾아왔다.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찾아온 경우. 견인차를 몰다 실직한 아버지는 수미가 거짓말을 하고 오락실만 들락거린다며 칼을 들이대고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수미는 지난해 아버지가 내리친 서랍에 머리를 맞아 다섯 바늘을 꿰매기도 했다.

성적 학대도 심각하다. P양(17)의 어머니는 96년초 외출에서 돌아와 딸이 피투성이가 돼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친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한 것. 아버지 P씨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으나 이후에도 계속 딸을 강간했고 결국 어머니는 딸과 함께 지난해 5월 서울 여성의 전화를 찾았다. 어머니는 P씨를 고소하고 이혼했다. P씨는 올초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아동학대 실태▼

81년 아동복지법이 생긴 뒤 19년이 흘렀다. 하지만 유엔이 정한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 중에 보호나 발달은커녕 생존마저 위협받는 사례가 허다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金勝權)박사는 98년 연구자료에서 우리나라 가정의 아동학대 발생률은 2.6%로 약 50만7000명의 아동이 여러 형태의 학대로 신음 중인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어린이보호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288건의 아동학대 신고전화가 접수됐다. 이는 98년 139건에 비해 2배 이상의 수준. 특히 98년 24건으로 전체 발생유형의 17%에 그쳤던 성적 학대는 지난해 112건에 달해 전체의 38.9%를 차지할 만큼 빈번해졌다. 가해자로는 △이웃이 64건(22.2%) △계모가 52건(18.1%) △친부 49건(17.0%) △친모 28건(9.7%) △교사 19건(6.6%) △계부 13건(4.5%) 등의 순이었다.

특히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2564건 중 7∼13세 어린이와 7세 미만 유아에 대한 성학대는 약 20%인 510건이었으며 강간 피해자의 11.4%인 136명이 어린이 또는 유아였다. 전문가들은 아동 성학대의 신고율이 3% 미만일 것으로 추산해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아동학대의 원인▼

아동학대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아동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낮다는 점이 지적된다. 아동학대문제연구소 이호균(李好均)소장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아직도 아이들을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핵가족화로 인해 부모 친척에 의한 아동학대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아 아이들이 보호받을 길이 좁다는 것도 문제이다.한국성폭력상담소 백명자상담국장(41)은 ““피해아동을 보호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사람이 바로 가해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피해 아동과 어머니를 가해자로부터 격리 보호할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문제.

▼정부대책▼

정부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7월13일부터 시행한다. 아이들의 표현력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해 외국에서는 심리치료사나 상담가가 아이와 단독으로 상담하는 내용을 녹음해 그것을 법정에서 그대로 증거로 채택하는 등의 방법이 이용되나 개정 아동복지법은 대리자 진술 인정의 폭을 넓혀놓은 수준이다.

아동학대에 성적 학대를 명시했으며 신고의무자를 지정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에게 현장조사권을 부여한 것도 일단 발전된 측면이다. 또 뒤늦게나마 아동학대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위해 지난해 4월부터 학계전문가들을 통해 ‘아동학대 후유증 연구사업’도 실시 중이다.

그러나 한국복지재단 사무국장 이광문씨(35)는 “법제도의 마련도 중요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처리를 단순히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아동의 상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아동복지를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원·김승진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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