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13개 市都 말라리아 위험지역 지정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50분


70년대 후반 이후 거의 소멸했던 ‘가난의 질병’ 말라리아가 최근 경기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어 이곳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95년까지만 해도 정부와 학자들이 말라리아의 국내 토착화 가능성은 없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이제는 아무도 토착화 가능성을 부인하기 힘든 상황이다.

6·25전쟁 이후 유행했던 말라리아는 70년대 후반 거의 소멸돼 84년을 마지막으로 국내에선 8년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다시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한 것은 93년 7월.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서 전방 야외훈련 조교로 근무하던 군인 1명이 말라리아 환자로 판명됐다.

말라리아가 다시 발생한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의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유입된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인하대병원 감염내과 정문현(鄭文現)교수는 “94년 환자 발생지역을 보면 휴전선을 따라 남북으로 좁고 동서로 길게 분포돼 있다”며 “북한에서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말라리아 환자는 3월 말 현재 모두 41명. 이 중 12명이 경기도에서 발생했다. 경기 파주시 적성면 신모씨(43)는 고열증세를 보여 지난달 13일 경기 연천군 전곡백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말라리아 환자로 판명돼 치료를 받았다. 경기 김포시 걸포동 김모씨(30)도 3월 17일 김포시보건소의 검사 결과 말라리아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경기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말라리아 환자는 모두 772명으로 98년 677명에 비해 14% 늘어났다. 지난해 전국의 말라리아 환자 1541명의 50%, 경기도 전체(1096명)의 70%가 경기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것. 특히 고양시와 파주시, 연천군 등 3개 시군(619명)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

말라리아는 세계적으로 결핵 다음으로 사람을 많이 죽게 하는 감염질환. 세계 9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매년 5억명 정도가 말라리아에 걸리고, 그 중 200만명이 죽어간다.

말라리아가 최근 다시 증가하는 원인으로는 환경 파괴, 난민의 이동, 지구온난화가 꼽히고 있다.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말라리아의 등장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말라리아는 말라리아 원충을 갖고 있는 아노펠레스 모기 암컷이 사람의 피를 빨 때 감염된다. 이 원충은 인체 안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변형되면서 적혈구를 파괴한다.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의 피를 빤 모기는 다시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된다.

말라리아는 삼일열 말라리아, 열대열 말라리아, 사일열 말라리아, 난형삼일열 말라리아 등 4종류가 있다. 가장 증상이 심하고 치사율이 높은 것은 열대지역에서 발생하는 열대열 말라리아. 국내에 유행하는 것은 삼일열 말라리아로 중국얼룩무늬날개모기를 통해 감염된다. 아직 국내에서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국립보건원 김동수(金東洙)연구관은 “중국얼룩무늬날개모기는 경기 북부지역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따라서 서울과 서울 이남 지역에서도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474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보고됐으나 이 중 240명은 경기 북부 지역에서 군인으로 근무한 사람이었고 188명은 야영이나 낚시 등을 했던 사람이었다. 나머지 46명의 경우도 서울에서 감염됐는지 확인되지 않아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서울까지 침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는 상태다.

국립보건원은 지난해 말 말라리아 환자가 인구 10만명당 10명 이상 발생한 경기 인천 강원 지역의 13곳을 위험지역으로 발표했다. 또 이들 지역 가운데 말라리아 환자가 100명 이상 발생한 파주시 교하면과 김포시 양촌면 등 36개 읍 면 동을 고위험지역으로 지정해 특별관리하기로 했다. 지정된 위험지역은 경기의 고양시 일산구, 김포시, 동두천시, 양주군, 연천군, 포천군, 인천시의 강화군과 옹진군, 강원도의 양구군과 철원군 등이다.

경기도 제2청은 경기북부의 대부분 지역이 말라리아 고위험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열병신고센터 및 기동방역반을 운영하는 등 긴급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열병신고센터는 환자 발생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보건소 역학조사반을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파주시 7곳, 연천군 8곳, 포천군 1곳 등 말라리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의 주민 1100명에 대해서는 수시로 항체검사를 실시해 감염환자를 조기 발견하는 체제를 갖춰 나가기로 했다. 인천시도 1일 강화군과 옹진군 지역에 살충제를 2차례 살포하고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등을 메워줄 것을 당부했다.

말라리아에 감염되면 짧게는 한달, 길게는 1년까지 잠복기를 거친 뒤 두통 피로 고열 오한 근육통 등의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적절하게 치료받으면 쉽게 나을 수 있다. 예방을 위해서는 모기를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말라리아 유행지역에서 군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다녀와 감염 위험이 있는 사람은 예방약을 복용해야 한다.

국립보건원은 모기의 활동이 활발한 초저녁에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줄 것을 당부했다. 또 밤에 외출할 때는 긴소매 옷을 입고 반바지나 모기를 자극하는 짙은 색 옷은 입지 않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박정규·정용관기자> 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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