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왜 하필 2400cc" 美등과 車협상 마찰 우려

  • 입력 2000년 4월 25일 19시 49분


재정경제부가 배기량 2400㏄ 이상의 승용차와 고급주택 등의 모든 거래내용을 국세청에 자동 통보토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정부 내 다른 부처와 경제계 일각에서 국가 조세권을 남용한 행정편의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좋은 차를 굴린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을 감시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클 뿐만 아니라 고급 승용차를 가르는 기준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

▽정부의 논리〓정부가 24일 입법 예고한 ‘과세자료의 제출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2200여개 정부기관 및 단체들이 92종의 관련자료를 반드시 국세청에 제출토록 규정하고 있다. 제출대상에는 배기량 2400㏄ 이상의 승용차와 고급주택 별장 요트 등의 구입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들 자료는 지금도 국무총리 훈령에 따라 세무서 직원이 지방자치단체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수집하고 있다. 새 시행령은 임의사항이던 자료제출을 의무화하는 한편 과세자료 수집의 주체를 세무서에서 일선기관으로 바꾼 것.

재경부 관계자는 “소득원이 분명하지 않은 호화사치 생활자들의 과세자료는 평소에 꾸준히 축적해둬야 특별 세무조사가 실시될 때 세금을 부과하기 쉽다”고 말해 행정편의가 목적임을 시인했다.

특히 고급승용차의 판별기준을 배기량 2400㏄로 정한 것은 다분히 정부의 자의적 판단이 라는 비판이 강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모든 승용차의 거래기록을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을 감안해 ‘사회 통념상’ 고급 차로 볼 수 있는 2400㏄를 기준치로 정했다고 주장했다.

▽통상마찰 발생가능성〓전문가들은 세원관리 강화라는 입법 취지를 일정부분 인정하더라도 이처럼 설익은 정부 정책이 시행될 경우 자칫 ‘가진 자’를 ‘예비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풍조를 퍼뜨려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정부는 소득에 대해 정확하고 공정하게 세금을 걷으면 되는 것”이라며 “문제는 당국이 과세원칙을 입맛에 맞게 수시로 바꾸고 세원확보를 명분으로 축적한 자료를 ‘손보기’ 차원으로 너무 자주 변질시켰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해당기관과의 협조가 안되고 세원확보가 어려워 거래내용 통보를 의무화했다는 논리는 그만큼 지금까지의 세정에 모순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는 것.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2400㏄ 이상 승용차부문. 수입외제차들은 대부분 배기량이 국산차보다 크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불만이 많은 미국 등 자동차수출국에 공격의 빌미를 줄 것이 분명하다. 산업자원부 장관이 통상압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수입차를 탈 뜻을 공개적으로 밝힐 만큼 절박한 마당에 근거도 불분명한 승용차 배기량을 잣대로 호화사치 생활자를 규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정부 내에서도 쏟아지고 있다. 재경부는 새 시행령이 입법 예고중인 상태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발뺌하지만

이번 조치로 업무량이 크게 늘어나게 된 일선 기관들도 새 시행령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어 앞으로 최종 확정 때까지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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