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公正委·情通部의 보신주의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26분


하나의 정책은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책 결정 과정은 선택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경제를 담당하는 정부 관리들은 흔히 언론이 이 사실을 잊고 부정적인 면만을 침소봉대하여 정책을 비판한다고 항변한다. 사실 이 같은 항변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고 있다. 어느 쪽이 최선의 선택인지를 정책 결정 당시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리들의 정책 결정이 모든 경우에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더구나 마땅히 해야 할 결정을 미룸으로써 문제를 키우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를 둘러싼 정부의 행보가 그렇다.

SK는 지난해 12월 20일 포항제철과 코오롱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해 신세기통신 지분 51.19%를 확보했다. 이로써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을 합하면 휴대전화시장의 57%를 차지하는 절대 강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현행 공정거래법은 기업결합의 결과 1개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으면 결합을 불허한다. 지나친 시장지배력은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 기업결합으로 효율이 현저하게 향상되는 경우와 적자기업을 인수하는 경우는 예외로 하지만 신세기통신은 98, 99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두 번째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현저한 효율 향상’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기간 결정을 미룬 채 방치한 행태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해당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뚜렷한 이유 없이 4개월 동안 미적거리다가 4월 12일과 19일 두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또 다시 결정을 미루었다.

결정 유보의 배경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당초에는 정치 쟁점화될 수 있는 문제를 총선 전에 처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총선이 끝난 다음에는 스스로 파놓은 덫에 걸려 진퇴양난의 입장에 빠져버렸다.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SK는 신세기통신의 임원까지 완전히 물갈이하면서 사실상의 합병절차를 끝마쳤다. 주식시장에서는 SK의 신세기 인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주가에도 모두 반영됐다. 코오롱은 이미 주식 매각대금으로 받은 1조원을 다 써버렸다.

한 마디로 현 시점에서 SK의 신세기 인수를 불허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했다. 이제 와서 승인하자니 명분이 뚜렷하지 않고 불허하자니 시장에 줄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시간을 끌다 문제를 키운 셈이다.

일찌감치 ‘조건부 허용’ 의견을 냈던 정보통신부도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사후 문제가 생겼을 때 빠져나가기 위한 발판 마련에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말은 ‘조건부 허용’이지만 160만명의 가입자를 스스로 줄이거나 연간 2700억원의 정보화촉진기금을 내야 하는 교묘한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정위와 정통부 모두 소비자와 국민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지나친 정치적 고려’ 때문에 결정을 미루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여 사실상 직무를 유기했다.

실질적인 심사와 소신있는 결정보다는 무책임과 보신주의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두 부처는 어떻게 대답할까.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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