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금융계 '낙하산 怪談’

  • 입력 2000년 4월 20일 21시 06분


금융계가 2단계 구조조정의 향배에 마음을 졸이고 있지만 정작 금융정책의 3대 축을 이루는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한국은행 간부들의 촉각은 이미 공석이 됐거나 자리가 빌 여지가 있는 은행장과 산하기관장, 내부승진 등을 둘러싼 인사 문제에 쏠려 있는 것 같다.

당장 후임자를 정해야 할 곳은 외환은행장 예금보험공사사장 금융연수원장 한은감사 등 5, 6자리. 인선결과에 따라 국책은행장 자리가 하나 더 생길 수 있고 재경부 1급과 한은 임원, 금감원 부원장보 등의 연쇄 승진인사도 예상된다.

인사철이면 늘 그렇듯이 자천타천의 하마평이 거론되고 후보별로 장단점에 대한 품평이 곁들여진다. 예컨대 A씨는 ‘출신지역이 강점이지만 업무능력이 부족하고’ B씨는 ‘임명권자와 가깝지만 조직 내 서열이 낮다’는 식. 재경부 국장은 “이 기회에 한명이라도 더 나가야 인사숨통이 트여 아랫사람들도 일할 맛 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문제는 해당직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전문성이나 업무추진력과는 상관없이 지연이나 학연, 고위층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이런 저런 내정설이 설득력을 얻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풍토. 예를 들어 예보사장 인사가 1주일 가까이 지연되면서 후임에 관료 출신이 아니라 ‘대통령과 관련 있는 실세’가 올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애당초 능력에 맞는 인사를 실천할 의지가 없었다면 정부 부처는 낙하산으로 자리를 빼앗겨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예보사장은 국민의 재산인 공적자금 조성과 회수를 책임지면서 예금보험제도를 활용해 금융 구조조정 상황을 현장에서 세밀히 조율해야 하는 자리이고, 외환은행장은 5000여 행원들의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소문이 사실이라면 우리 금융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라는 좌절감이 벌써부터 시장에 퍼지고 있다. 인사에 관한 한 금융계 시계는 여전히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박원재<경제부기자> 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