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 존]아카데미 2000의 인물 - 케빈 스페이시

  • 입력 2000년 3월 31일 11시 56분


케빈 스페이시(40)는 절정에 이른 환희보다 그 후에 감당해야 할 무게를 헤아리는 사람이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라는 의례적인 말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수상 소감을 시작한 그는 곧 "이것이 내리막길의 시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4년 전 스페이시가 <유주얼 서스펙트>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장래를 위와 비슷한 말로 회의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악명 높은 범죄자 카이저 소제(유주얼 서스펙트)와 짧은 등장으로 섬뜩한 인상을 남긴 연쇄살인자(세븐)를 연기했을 때 역시 사람들은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보냈지만 그가 차가운 잔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이시는 <아메리칸 뷰티>에서 또 다시 '최고'가 되었다. 이것은 <벼랑 끝에 걸린 사나이>의 냉혹한 영화사 간부 이후 스페이시가 연기해 온 "완고하고 불가해한" 인물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최고다.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에서조차 잔인한 메뚜기의 목소리를 연기한 이 그늘진 배우는 이번 수상으로 자신의 폐쇄공간에서 성공적으로 빠져 나왔다는 것을 입증했다.

실제로 그는 <아메리칸 뷰티>에서 저속하고 뻔뻔하며 무기력한 중년 남성을 빼어나게 연기했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단단한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제 스페이시가 중년의 위기를 표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되는 몇 시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초조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을 스페이시는 자신의 승리를 넉넉하게 즐기는 여유도 보여 주었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 출연한 잭 레먼에게 감사한다. 나에게 영감을 준 레먼은 친구이자 조언자이며 아버지였다"고 침착하게 말했다.

만 하루 동안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이 무대의 중심이었던 스페이시는 다시 배우로 돌아갔다. 그의 차기작은 <딥 임팩트>의 미미 레더가 감독하는 코미디 <페이 잇 포워드>. 온기 없고 이기적인 범죄자에서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려는 중년 남성으로 옮겨간 스페이시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던 젊은 시절의 경험을 되살리게 된 것이다. 그의 다음 행보가 어떤 것이든 스페이시는 "사람은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조를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정(FILM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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