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인물은 좋은데 黨이?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10분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 시사평론가로서 나는 아무 말이나 막 한다는, 약간의 질책과 많은 부러움이 뒤섞인 지적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프리랜서라고 해서 정말로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는 글을 쓰면 독자들은 즉각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키라는 항의를 보내온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쟁점일수록 그 반작용은 더욱 격렬하다.

▼정치인 노무현의 '우직함'▼

여야를 비판하는 글을 각각 한 번씩 쓴다고 하자. 그러면 야당 지지자는 여당 편을 든 칼럼을 문제삼아 ‘정권의 나팔수’라는 비난을 날리고 여당 지지자는 야당을 옹호한 칼럼을 들어 정체를 밝히라고 호통을 친다. 그래서 특정 언론사에 몸담고 있는 칼럼니스트들은 자칫 자신의 견해가 그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으로 오해받는 사태가 생길까 봐서 말을 조심하게 된다. 이것이 언론인들로 하여금 양비론과 양시론에 안주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다.

물론 언론인이 특정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을 내놓고 또는 은근히 편드는 것은 경계하고 삼가야 할 일이며,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 아니라 정치발전에 대한 국민의 요청에 비추어 마땅히 북돋워주어야 할 사람을 격려하는 칼럼조차도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몹시 미련한 어느 정치인을 위해 몇 마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정치적 유착의 혐의를 각오하고서 이런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그가 우리 정치가 빠져 있는 비극적 상황과 아울러 그것을 타개할 한 가닥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노무현이다.

노무현은 미련한 정치인이다. 그간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알다시피 그는 88년 13대 총선에서 YS의 통일민주당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지만, YS의 3당합당을 반(反)호남 지역연합을 구축하는 정치적 야합이요,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합류를 거부했다. 지금 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인 이인제씨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노동부장관과 경기지사 등 화려한 경력을 쌓는 동안, 13대 국회 노동위원회에서 함께 뛰었던 노무현은 ‘김대중당’과의 야권통합을 결행했고 당시 여당의 아성이던 부산에서 국회의원과 시장 후보로 출마해 내리 세 번씩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한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겨우 승리를 거두고 국회로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종로구를 버리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명분은 지역주의 정면돌파였다.

낙선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인물은 좋은데 당이 좀….” 능력은 흔쾌히 인정하지만 ‘김대중당’에 몸담고 있어서 찍어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전국적으로 고르게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을 연거푸 낙선시켰던 부산 시민들 가운데는 미안함을 토로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인물 좋은 신랑감이 한아름 꽃을 들고 구애를 하는데 시아버지 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거듭 내쫓아 버린 신부감 가족의 마음이 편치 않은 셈이라고나 할까. 벌써 네 번째 일편단심 다시 찾아온 이 미련한 사나이를 위해 부산 시민들이 이번에는 과연 문을 열어줄 것인가? 아직은 도무지 분명치가 않다.

이번 총선은 DJ와 JP가 공천권을 행사하는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다. 좋든 싫든 3김정치는 이 선거를 계기로 급속한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폐허에 누가 어떤 정치를 세우게 될까. 만약 정치인 노무현이 부산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지역주의 역풍을 우직스럽게 돌파한 ‘미련함’으로 과거와는 다른 정치를 세우는 데 결코 작지 않은 역할을 하리라 본다. 이런 면에서 부산 북-강서을 유권자들은 우리 정치의 미래를 여는 열쇠 가운데 하나를 쥐고 있다고 하겠다.

▼지역주의 극복 큰 역할 기대▼

정치적 오해를 각오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름의 신념과 지조를 지키는 사람을 비웃는 천박하고 답답한 세태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는 비난은 그 분노의 표출을 참지 못한 ‘부덕의 소치’로 흔쾌히 받아들일 것임을 독자들께 미리 말씀드린다.

유시민(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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