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라이프 마이 스타일]함길수씨/방랑자로 살기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10분


1985년 한양대 독어독문학과 1학년이었던 그는 독일에 가고 싶었다. 그냥. 그러나 이렇게 시작한 여행이 그의 삶을 ‘방랑’으로 규정지을 줄은 그자신도 몰랐다.

노이슈반스타인 하이델베르크 등 교재에 자주 나오는 장소를 직접 가서 보고 싶었다. 86년 말 군에 입대, 89년 초 제대할 때까지 그의 머리 속에는 내내 독일 생각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제대하자마자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철가방으로 나선다. “자장면 왔어요!” 두 달간 60여만원을 벌었다.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갔다. 벨기에로 입양되는 아이를 양부모에게 데려다주기로 하고 비행기표를 싸게 구했다. 처음 밟아보는 외국땅. 그는 노숙을 하며 두 달동안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16개국을 돌아다닌다.

지금 하는 일은 벤처기업 테크웨이브에서 준비중인 여행정보제공 인터넷사이트(www.cybertournet.com)의 컨텐츠를 마련하는 일. 장래가 불확실한 업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는 “그 동안 해 왔던 일에 비하면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안정된 직업”이라며 만족해 한다.

처음 유럽여행을 갔다 온 뒤에도 틈만 나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상을 더 보겠다”는 단순명쾌한 이유. 92년 졸업할 때까지 일본 20여차례를 비롯해 동남아 미국 중남미 등 10여개국을 짧게는 3박4일, 길게는 넉달씩 갔다 왔다. 때로는 걷기도 하고, 때로는 자전거나 125cc 오토바이를 타고. 캐논 EOS5를 들고 다니며 사진도 찍었다.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과 글을 잡지사에 팔았고, 원고료가 들어오면 그는 또 바깥세상을 기웃거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룹 산하 여행사에 갈 수도 있었으나 틀에 짜인 여행은 싫었다. 그곳에서 그는 그러나 가장 답답한 1년을 보낸다. 1년에 4, 5개월은 외국에서 산 그에게 칸막이가 쳐진 사무실은 ‘감옥’이었다.

94년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여행기획사를 세우고 이듬해 삼성자동차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에 나선다. 삼성트럭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 우즈베키스탄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핀란드를 지나 포루투갈 리스본까지 2만5000㎞의 대장정을 하면서 비로소 ‘인간’에 눈을 뜬다. 그동안은 ‘자연’을 감상하면서 여행을 다닌 그였다.

트럭을 몰고 러시아 이루쿠츠쿠지역을 지날 때였다. 유배자의 후손들을 봤다. 척박한 땅이었다. 창을 뚫고 들어온 창백한 백야의 햇빛이 비추는 그들의 식탁 위에는 삶은 감자와 멀건 스프만 놓여있었다. 고단한 손으로 한술 한술 뜨는 대학교수의 표정은 그러나 온화했다.

추운 골목에서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 놓고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를 연주하는 다섯살짜리 꼬마, 고개를 숙인 채 동냥하는 노파의 풀어헤친 흰 머리카락이 황금빛 태양을 눈부시게 받아내던 모습을 아직 잊지 못한다. 체제의 노예로, 가난한 생활속에 살면서도 높은 문화적인 수준만은 잃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여행한 거리가 35만㎞. 지구 7.6바퀴 거리다. 하고 싶던 여행도 실컷하고 돈도 그런대로 벌리고, 사업은 잘 되는 듯 했다. 그러나 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 시작되면서 일거리가 끊기고 곧 빚더미에 앉게 됐다.

배추장사를 시작했다. 1톤 트럭을 몰고 강원 정선에서 고랭지 배추를 떼어다가 서울의 아파트단지에서 파는 ‘한반도 횡단’을 했다. 시베리아에 사는 유배자의 후손들, 가난을 받아들이며 내세를 기원하는 인도 하층민의 모습이 떠올라 힘들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미혼. 남들처럼 ‘뭐가 되겠다’는 목표가 없으니 지금 무엇을 하든 거칠 것이 없다. ‘그렇게 여행을 해서 결국엔 뭘 하겠다는 거냐’는 질문도 그에게는 당치않다. 그저 세계를 보겠다는 일념뿐. 사람이 살면서 꼭 무엇을 하거나,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행은 사색을 낳고, 사색은 지식을 낳고, 지식은 용기를 낳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입버릇처럼 이런 얘기를 하는 그의 눈에는 힘이 있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배추장사로서, 탐험가로서, 벤처사업가로서, 앞으로 갈 길이 내리막길이든 오르막길이든, 인도인들이나 시베리아의 유배자의 후손들처럼 마음만 충만하다면 무서울 게 없지요.”

올해가 가기 전에 그는 그리스 터키 미국의 뉴욕 인도차이나 라자스탄 파키스탄을 다녀 올 생각이다.

<나성엽기자> 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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